"모팅아~니가 엄마한테 얘기 좀 해봐라. 엄마가 자꾸 내일 생신이라고 하시네"
이게 뭔 소리야?
3일 연휴였지만 하루는 문상가고 하루는 그냥 쉬고
마지막날은 집 뒤로 나 있는 산보길을 넉넉한 시간으로 즐길 작정으로 나왔는데
바람이 쎄하다 싶더니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코가 빨개진 남자가 윗옷 뒷목에 걸린 모자를 내 모자 위에 덧씌워주는 찰라에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노래를 불러댔다.
말인즉슨, 아버지 기일이 가까워서 작은언니가 엄마를 뵈러 왔는데
다짜고짜 내일이 내 생일인데 어째 아무도 기별이 없냐는 것이다.
아버지 기일이 지나고 설도 쇠고나야 엄마 생신인데 뭔 소린지
둘이 실갱이를 하다가 날더러 확실한 답을 부탁하노라는 언니의 전화였던 것이다.
"엄마~"
"은냐"
"추분데 우찌 지내셔?"
"집에 잘 있다."
"근데 엄마 우짠 생일.."
"아이고 참내...내가 이래 정신이 읎다. 나는 내일이 내 생일인줄 알았다.
나가 (나이가)묵으모 죽어야 되는데 우째 이래 오래 살아가 정신읎는 소리를 해쌋는다."
"하이고 참 옴마도..씰데 없는 소리 해싸시네.
추분께 밖에 나갈 때 조심하고 주머니에 손 넣코 댕기지 말고 장갑끼고 댕겨.
갠히 넘어지면 고생항께. 알았찌?"
"그래 밖에도 몬나가긋다. 날씨가 새꼬롬한기 추불랑갑다.
가만있다가 느그 아부지 지사(제사)때만 되믄 추분기라."
아버지 기일에는 내려올 수 있겠냐는 언니의 말에 꼭 가겠다며 안부를 묻었다.
내리던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엄마가 이상하시네. 손자며느리 몸 푼지 백 일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자꾸 친정에 몸 풀러 갔다고 하시질 않나.
작년에는 아버지 기일을 착각하시어 동생한테 호령을 부렸다고 하던데
올해는 당신 생일을 착각하시네. 겁나네...
그러고 보니 지난 가을에 뵜던 엄마의 의복이 신경이 쓰인다.
참 깔끔하고 바지런하신데 그날 바지에 얼룩이 더럭더럭 했던 기억이 난다.
계피사탕 냄새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까.
빈 서랍에서 먹다 만 고구마 꼬갱이를 발견하던 날도 그랬고
짝짝이로 묶어 놓은 양말짝을 보면서도 가슴이 싸했었다.
엄마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보일러 온도를 높였다.
주방 싱크대 앞이 가장 따뜻하다.
무릎덮개로 발을 덮고 아랫목에 앉은양
이상한 모양새로 싱크대에 기대었다.
12월의 30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
365일을 예약하던 날
한참 후에 오늘이 올 줄 알았는데 금방이다.
오늘이 어제되고 내일이 오늘 되는 하루만 더 가면
예약했던 삼백예순다섯 날을 마감한다.
손에 쥔 것은 없을지라도 가슴에 남은 것은 있지 않을까
더듬더듬 그 따뜻한 기억을 찾아볼 때인것 같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모퉁이에
내 이름 석 자 가둬져 있기만 해도 좋겠다.
너무 큰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