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잘 지내시나요?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네요. 엊그제가 장날이더만요. 복작대는 장터 어느 곳에 엄마 걸음도 있지 않을까 싶던데 차례준비는 얼추 했겠지요?
아마 시장을 몇 번은 다녀왔을텐데 많이 힘들었지요? 남들은 나이에 비해 정정하다고 하지만 우리 눈에는 완전 할매던데요. 엄마! 추석이 가까우면 뭐 또 생각나는 날 없수? 그 유명한 사라호 태풍 불던 해 다섯번째 딸을 낳고 산후조리 하느라 큰집에 차례 지내러 못 가셨담서요. 막 한 이레가 지났으니 몸조리 해야지요. 차례 지내러 가셨던 아버지 까딱했으면 떨어져 날아온 건물 간판에 머리 다칠뻔 했다는 이야기 열댓번은 들은 것 같은데 참말이었어요? 며칠 전이 그 해 추석날 품에 안고 있던 딸 생일이었어요. 벌써 반세기를 살았다 싶으니 징그럽네요. 나는 쉰이 안 될 줄 알았거든요. ㅎㅎㅎ 엄마 손녀딸들이 케잌도 사오고 미역국도 끓이고 아침부터 촛불을 키고 생쇼를 하는 동안 오서방은 뭔 날인줄도 모르고 있더만요. 워낙 싱거운 짓 잘 하는 사람이라 모른척 하는가 싶었는데 참말로 몰랐다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몰랐다고 하는건 뭐래요? 너무 솔직한 거 있지요. 그래서 좀 서운했어요. 특별한 선물같은 것은 없었어도 날짜는 기억하더만 올해는 날짜조차 잊었더라고요. 미안타며 저녁이나 먹자는데 언제는 생일자가 턱 내는 거라며 내 지갑을 털어 먹길래 올해는 오서방 지갑을 열게 했어요. 그게 그건데 뭘 그리 따지냐고요? 그래도 그게 아니거든요. 그런데요 한참 밥 잘 먹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확 솟구치는 거여요. 왜냐고요? 이웃집 친구가 벌나무라나 그게 우리 몸 어디에 좋다며 주길래 그것을 끓이고 있었는데 한참 밥을 먹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났고 집 나올 때 가스 불을 껐나 안 껐나 기억이 안나는거여요. 생각이 나도 어째 밥을 다 먹고 나걸랑 나던지 한참 맛있는 중에 날게 뭐람요. 밥맛도 모르겠고 입이 마르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겁니다. 요즘 초보운전 딱지 면할려고 운전연습을 슬슬 하는 중인데 손이 떨리고 심장이 발랑거려서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어요. 집에서 나올 때 아무 낌새도 못 느꼈다며 걱정말라는 오서방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자주 깜빡대는 내가 걱정스러웠어요. 집 앞에 와서 보니 동네도 조용하고 연기 냄새도 안나고 현관문을 열고 보니 작은 거실이 아늑 그 자체인거 있지요. 엄마! 요새 왜 이렇게 건망증이 심하지요? 수술 하면서 전신마취를 한 후유증인지, 나이 들어 생기는 자연현상인지 남이 하면 재밌는데 내가 하니 우울하네요. 엄마도 내 나이 때 건망증 심했나요? 삼십년 전 일이라 생각 안난다고요? 하하하..그거 말 된다고 봐요. 참 엄마! 내 생일날 엄마한테 전화를 할까 하다 안했는데... 너무 멀리 와 버린 엄마의 세월이 기가 막힐까봐 안했어요. 줄줄이 일곱이나 되는 딸들 생일 다 기억하나요? 둘을 잃은 날도 기억하나요? 괜히 꺼내어 닫아둔 가슴 속 응어리 들쑤시게 될까봐 관뒀어요. 추석이 지나고 이틀 후가 아버지 생신이었지요. 추석 끝이라 시장도 시원찮고 음식을 보관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아버지 생신상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예순을 꽉 채우고 두 해를 앓으시다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의 삶도 참 짧았습니다. "느그 아부지가 살림은 뿌사도 사람은 안 패니라." 느그 어데 한 대 맞아봤나?" 맞아요. 뭐에 화가 나셨는지 밥상을 뒤엎을 때도 있었고 간장독을 깨부신 적도 있었다고 언니가 기억하더만요. 참 원망 많은 세월이 아버지께도 있었지요. 아버지 기일 때면 하도 틀어대어 한참 늘어진 테잎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레파토리. 이번 추석에도 아버지 좋아하시던 바나나는 꼭 준비하시겠지요. 나는 얻어 먹어본 기억도 없는데 막둥이는 먹었다고 기억하데요. 역시 아버지는 막내를 많이 챙기셨어요. 하긴 쉰둥이였으니 많이 애잔했겠지요. 이제 그 막둥이가 불혹을 넘겼어요. 엄마 옆에서 왼팔노릇을 해주고 있어 고맙고 미안한 동생이지요. 올해도 아마 제일 먼저 엄마한테 갈 거여요. 엄마~! 나는 다음 달 쯤에 한번 갈까 해요. 말랑말랑한 말도 못하고 간지럼도 피우지 못하는 작대기 같은 딸이지만 지금처럼 해가 질 무렵이면 빨래를 걷다가도 엄마 생각이 나고요, 맵싸한 고추를 넣고 바글바글 끓인 된장찌개가 맛있게 된 날도 엄마 생각이 나서 훅 국물을 불어 먹게 되고요, 호박죽을 끓인 날은 아버지 생각까지 겹쳐서 피식 웃기도 합니다. 호박나물에 호박죽은 아버지가 좋아하신 음식이잖아요. 저녁 바람이 제법 싸하네요. 따뜻한 국물이나 있는지.... 나는 감자국을 끓일까 하는데요. 들깨가루 넣고 순하게 끓여서 먹을라고요. 엄마도 잡숫기 좋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생각은 안할랍니다. 그냥 지금처럼 엄마가 편한대로 지내세요. 이웃들과도 잘 지내시고요. 엄마! 그냥 한번 불러봤어요.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