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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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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고 또 보내고


BY 모퉁이 2009-05-14

"한번 올 때 안 됐냐?"

"내일 간다. 안 바뿌나?"

"내일 병원에서 보자."
"알았다."

 

참말로 간단하고 재미라고는 메추리 눈물만큼도 없는 문자 메시지다.

내가 먼저 보내고 답이 오고 가는 순서가 이렇다.

남편이 보내는 문자가 성의없고 재미없다 타박해놓고

내가 그짝을 닮아간다.

내용은 짧지만 다 알아듣는다.

그러니까, 3개월 전에 얼굴도 못 보고 내려간 친구가

정기검진을 받으러 오는 날이었고, 이번엔 한번 보자는 내용이다.

병원까지는 집에서 버스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7~8분을 걷는데 1시간 20여분이 걸린다.

몇 달만에 가 본 동네는 그사이 많이 변해있었다.

재개발 한다는 소문이 있더니 초등학교도 하나 생긴 것 같고

주변도 아주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서

예전의 모습은 기억이 희미하다.

 

병원 로비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친구가 있을만한 곳은 채혈실 앞이거나 로비 어느 한 자리일테다.

두리번 거리다가  가장 빠른 방법으로 휴대전화를 눌렀다.

세상 참 좋아졌지. 휴대전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다가도 이럴땐 요긴하다.

ㅎㅎ..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서로를 찾아대고 있었다.

나는 접수실 앞에 친구는 약 타는 곳 앞에서.

막 커피를 한 잔 뺐는데 너무 진해서 물을 타고 있던 중이라 했다.

컵 가득 찬 커피가 출렁출렁 넘치려고 하자 얼른 한 모금 들이키는 폼이

영락없이 저 엄마다. 갈수록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친구.

 

채혈을 해놓고 검사결과를 받고 진료하기까지  세 시간 여가 남았다.

검사결과가 좋아야 될텐데..

친구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긴장 될 것이고

나는 그 시간을 잡담으로 메꿔준다.

큰 병원이라 그런지 휴게시설도 잘 되어 있었다.

모두 환자이거나 보호자 아님 문병 온 사람들이겠지.

밝은 표정보다 우울한 표정이 더 많은 로비를 벗어나

사람들이 덜 붐비는 한적한 어느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꽃인지 꽃향기 치고는 별로 이뿐 냄새가 아닌 나무였다.

내 코가 이상한가, 내 주변에서 나는 냄샌가 의심했는데

친구 코에는 지린내 같단다. 표현이 아주 적나라하다.

가져간 김밥을 풀고 음료수를 놓고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밀린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두 여자.

 

이유없이 살이 빠져 걱정이었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봐 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친구야.

아니나 다를까. 얼굴이 반쪽이고 입가에 팔자주름이 드러날 정도였다.

뱃살도 쏙 빠지고 덕분에 딱 붙는 폴라티 맵시가 돋보이긴 하더라만

그게 좋아할 일만 아니더란다.

갑자기 체중이 준다는 것은 건강에 적신호라는 말에 바짝 긴장했고,

어느 정도 불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니 그동안 많이 수척했던 모양이다.

지금 이대로만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 하나 더 늘려놓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이 어째 산만해 보인다.

초조한 모양이다.

화장실을 벌써 두번째 다녀온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손에 들린 검사결과표를 보여준다.

간수치가 높게 나왔단다.

정상으로 나오길 바랬는데 기대에서 벗어나 아쉽다.

약 처방이 늘었고, 다음 검진에서는 여러가지 검사가 있을 모양이다.

선불식으로 내는 진료비가 제법 나왔다.

이렇게 해서 일 년이면 네 번을 다녀가게 된다.

3개월 인생이라며 씁쓸하게 웃던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져서 그런 생각은 않는다.

 

"나 쓸개 없다." 하며 깔깔 웃던 친구.

담즙이 분비되지 않아 거기에 맞는 약을 따로 먹어야 된단다.

몇 분의 면담을 위해 새벽기차를 타고 바쁜 걸음을 떼야 하는 길이

어느덧 8년째.

서울역으로 되오는 길에 벌써 피로가 묻어있다.

더 붙잡을 수도 없고, 그녀를 보낸다.

매번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여자.

반쯤 가다 뒤돌아보며 훠이훠이 손을 젓는다.

뭔가를 툭 놓쳐버린 듯이 허전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에스컬레이트 계단에 발을 옮겨 놓자 내 다리가 잠깐 휘청거린다.

덥다. 눈이 찡그러진다.

웃통을 벗은 노숙자씨 옆에 젊은 여자가 소줏병을 따르고 있었다.

같은 무리인지 어느 단체에서 나온 도우미인지 서로 친해보였다.

무슨 드라마를 찍는지 S본부 카메라가 돌아가고

어린 꼬마 둘이서 주거니받거니 대사를 읊어대고 있었다.

지하도로 들어와 내 가는 곳 출구를 찾는 동안

친구는 열차에 몸을 앉히고 피곤한 눈을 감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살이 좀 빠진 것과 간수치가 높게 나온 것이 약간 걸리긴 하지만

근래에 신경 쓸 일이 좀 있었고, 돌아다니느라 피곤했었다며

아마 최악의 순간에 검사를 해서 그런 것 같으니 걱정말라했다.

"거는 비 오나?"

다음 기회는 아마 이런 글 하나 띄워놓고 새벽기차를 타지 않을까 싶다.

 

비가 퍼붓거나 땡볕이 내리쬐더라도 널 만나러 갈꾸마.

건강하게 지내다 보자마.

어디쯤 가고 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