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울린 전화 속에 뜬 이름은 동창이다.
동창회에 나가지 않은지 제법 되었지만 서로 연락처는 저장해 두고 있었나 보다.
시침을 떼고
"여보세요?"
"아~옥자 아니가?"
"아~숙잔데..."
"아이구~옥자한테 한다는 게 니한테 갔네."
"으이그~옥자가 아니라서 미안타."
"아니다. 이렇게 해서 또 통화 한번 하는거지"
"왠 일이냐? 잘 지내지?"
"으응~그래. 옥자가 골프를 하잖냐. 해서 뭐 좀 물어볼라고.."
"으응~~그래.."
골프를 모르는 내가 답해 줄 거리도 없고
잘못 걸려온 전화를 놓아주어야 했다.
집 뒤로 나 있는 산책로 가는 길에 골프연습장이 있다.
실내 스크린 골프장이 아니고 푸른색 그물이 쳐져있는 야외연습장이다.
그 앞을 지나 산책로를 자주 간다.
휴일에는 주차장이 부족해 불방망이를 든 주차요원이 바쁘고
평일에도 주차장은 거의 만차이거나 조금 빠진다.
즐비한 차종들도 고급차가 많다.
아주 젊은 여자도 있고, 젊은 청년도 있다.
부모를 잘 만났거나 시집을 잘 간 사람들일까.
약간 벗겨진 이마 위로 번지르한 기름기가 보이는 남자와
짙은 화장을 한 중년의 여자가 차에서 내리자
얼른 골프가방을 들고 뒤따라 가는 사람은 운전기사일까.
키보다 더 큰 골프가방을 들고 종종 걸어가는 초등학생도 있다.
골프가 대세이긴 하나보다.
내 또래의 여자가 짙은색 안경을 머리띠처럼 걸치고 셔츠카라를 치켜세워 입고는
하얀색 골프가방을 들고 내리면서 지나가는 나와 마주쳤다.
검정색 등산바지에 분홍색 등산 셔츠를 입은 내가
마주 선 햇빛이 눈이 부셔 고개를 숙였다.
쩝~무슨 이런 순간 타이밍이 있나.
베트민턴을 치고 내려오는 이웃과 만나 서로의 땀을 격려해주었다.
골프를 치는 사람, 등산을 하는 사람, 베트민턴을 치는 사람.
서로 여건이 맞고 좋아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예쁜 강아지와 함께 나온 새댁,
낮은 경사에서도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신음소리를 내는 뱃살부인,
새 운동화가 어색한 지 자꾸 뒤꿈치를 두들겨 보는 중년 아저씨,
작은 베낭을 장식처럼 등에 매고 이어폰을 낀 흰머리가 더 많은 할머니,
늘 분홍모자에 하얀장갑을 낀 주근깨 많은 아줌마,
복면에 챙 넓은 모자에 온 몸을 칭칭 감은 자외선과 원수 진 듯한 아줌마,
훌라후프 두 번 돌리고 발등 찧은 아저씨,
늘 보는 사람,늘 보는 풍경의 산책로 휴식터.
있는 사람이 부리는 고집은 자존심이고
없는 사람이 부리는 고집은 열등감이라고 누가 그러더만
자존심도 열등감도 부질없는 말장난일 뿐
나는 두 팔을 흔들며 골프장을 지나 그 길을 걷는다.
어제 만난 발자국들 위에 내 발자국 하나 더 옮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