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극치를 맛봤다.
냉장고가 비어 내가 숨어 있어도 될 성 싶어
엊그제는 경동시장을 구경삼아 휘 다니러 갔다.
얼마만에 왔는지 버스 노선이 바뀐 줄도 모르고
마냥 앉았다가 눈에 익은 풍경에 놀라 일어났다.
이것저것 살 것은 많으나
팔 다리가 두 개씩이라는 것이 문제다.
적어놓은 목록은 집에 두고 오고
머리 속에 억지로 넣어 온 목록은 자꾸 집으로 갈려고 한다.
이것저것,,,팔이 점점 내려간다.
게장은 생각지도 않고 나섰는데
껍질 두꺼운 박하지가 꾸물떡 거리며 나를 유혹한다.
게으른 여자.
잠깐만 힘들이면 몇끼는 편할 것 같아 사 온 박하지에 간장물 달여 붓는데
눈대중에 실패해 간장물이 쬐끔 부족하다.
억지로 꾹꾹 눌러놓고
이틀 지난 지금, 꾸무리한 날,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날,
간장물이나 끓여 붓자.
모자란 양을 더 채워 슴슴하게 만들어진 간장 달여놓고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입은 왜 이리 또 심심하누.
냉동실에 오도카니 웅크리고 있는 떡쪼가리 하나 꺼내
전자렌지에 돌릴까 하다
포슬포슬 맛있게 먹을 양으로 삼발이 걸쳐놓고 찌기로 했지.
그 사이 잠깐 내가 뭘 했노?
이 방 저 방 댕기면서 정리 좀 하고
신문은 펼쳐만 놓고 티비를 봤나?
별시리 정신 판 데도 없다.
그런데 어데서 자꾸 틱..특..티딕... 뭔 소리가 난다.
위층에서 세탁기 물 내리는 소리려니..했다.
물 소리 치고는 약하고
베란다 밖에 키 큰 나무 가지치기를 하나? 그것도 아니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냄새고?
어느 집에서 소꼬리 고우나?
고무신 타는 냄새도 아니고,,뭐.......지....?
아뿔싸....
후다닥 걸음이 빨라졌다.
집이 좁기 망정이지.
떡 찌려다 집 찔 뻔 했다.
게으름 몰아내고 냄비 닦고 대청소 하라는 신호같다.
깜빡깜빡
왜 이런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