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4학년, 바람 소슬한 어느 가을 엄마 나이 마흔 둘에
일곱번 째 딸을 낳았는데, 지금의 내 막둥이 동생이다.
태어난 순서는 일곱번 째지만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두 언니가
엄마 가슴에 못질로 남았기 때문에 다섯째 딸이 되었다.
엄마는 막내를 낳기만 했지 건사하는 일은 위로 네 명의 자매가 맡아야 했다.
젖 주는 일은 엄마가 하고 업고 재우는 일은 우리가 했다.
그래도 잔병없이 잘 자라 밥도 먹고 과자도 먹을 나이가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한다.
여름방학이던가 그 전이던가,아무튼 날씨는 더웠다.
막둥이를 업고 옆집 춘희네로 놀러 갔었다.
방바닥에 내려 놓으니 여기저기 다니며 해작질을 해대고
등이 홀가분한 나는 방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인정많은 춘희는 나 같은 것도 손님이라고
부엌으로 가더니 토마토를 한 접시 썰어 들고 왔다.
쇠스랑을 닮은 길죽한 포크라는 것으로 토마토를 찍어 먹으라고 했다.
사카린 대신 하얀 설탕을 솔솔 뿌린 토마토는 참 맛있었다.
막내 동생도 이제 막 먹기 시작 하던 때여서 토마토를 쪽쪽 잘 받아 먹었다.
셋이서 게눈 감추듯 토마토 접시를 비우고 나자
접시 바닥에는 토마토 씨알갱이와 붉으스레한 단물이 흥건하게 남아 있었다.
요즘은 찰토마토가 나와서 덜하지만 그땐 토마토 속에 물이 많아서
자르지 않고 베어 먹다가 잘못하면 국물이 내 얼굴에 덤벙질을 하거나
브라우스 앞자락을 적시고 포플린 치마를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었다.
'설탕물이 베인 저 국물을 들이키면 참 맛있는데...'
아마 춘희도 나처럼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생각에 미쳐 있을 즘에 막둥이의 손이 접시를 집어 들었다.
접시를 들고 조막만한 얼굴을 온전히 덮어 쓴 채 그 접시를 핥아 먹는 것이었다.
국물은 이미 엎질러져 앞섶을 적시고,
남은 설탕물을 쪽쪽 빨아 먹는 동생이 얼마나 안스럽던지.
내 집에서 그랬으면 귀엽다고 재밌다고 웃었을텐데,
친구네 집에서 그런 행동을 하니 창피하고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막둥이의 등짝을 치면서 접시를 뺏어 들었다.
단맛에 취해 있던 막둥이는 느닷없는 등살짝에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울었다.
그만 그치라고 또 때렸다.
그리고는 얼른 동생을 업고 집으로 왔다.
막둥이는 집에 와서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볼에는 끈적한 설탕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후즐근한 땟국물을 그려놓고 있었다.
늙은 엄마한테서는 젖이 모자라 밥물을 받아 먹어야 했고
근근히 배달되는 목장우유가 양식이었던 막내는
단맛의 토마토 물이 얼마나 맛있었을까.
6학년이나 되는 나도 그 물이 먹고 싶었는데
세 살난 막내 입에는 얼마나 달았을까.
그날의 기억이 토마토를 먹을라치면 뜨끔뜨끔 생각나 우습다가 슬프다가 한다.
사람들마다 좋아하고 마다하는 음식이 있는데 엄마는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닝닝한 맛이 싫다시며 지금도 안 드신다.
요즘 나오는 방울토마토는 당도가 있어서 먹을만 한데
토마토라면 지금도 고개를 가로 저으신다.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을리는 없겠지만
그때는 모든 과일이 다 귀했고,우리집 처럼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밥이나 배불리 먹으면 그만이지 간식거리까지 넉넉하지가 못했다.
어쩌다 사 온 수박이나 허연 속까지 박박 긁어서 사카린 찔끔넣고
얼음 바늘귀로 톡톡 깨어넣고 국자로 휘휘 저어 국대접에 퍼담아 앞앞이 들고 앉으면
그날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넉넉하고 평화롭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철 마다않고 구경할 수 있는 과일과 채소들이 넘쳐나도록 풍성해서
달력을 보지 않으면 계절도 잊을 정도이니 얼만큼 달려온 세월인가.
사다놓은 토마토가 진하게 익어버려 잼을 만들었다.
드문드문 씹히는 씨가 톡톡거리고 쫄깃한 살이 씹혀 맛이 괜찮다.
집 안에는 토마토잼 단내가 가득하고
몇 알 남은 토마토가 발간 웃음을 던진다.
숭숭 썰어 막둥이와 같이 먹고 싶어진다.
세월을 건너 불혹의 막둥이는 그때 그날의 토마토 맛을 기억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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