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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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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알갱이가 되자


BY 모퉁이 2008-06-20

퇴원을 하고 며칠은 죽식으로 하다가 이내 일반식으로 식단을 바꿨다.

집근처 산책로를 걷는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생활도 평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개월여 지난 어느날 이웃으로 부터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결혼 전 5년 7개월 직장생활 외에는 전업주부로 안주하던 내가

남의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일이라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도 같은 마음인데 와서 보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같이 해보자고 했다.

일을 하다보면 병에 대한 잡념도 없어지고 오히려 나을 것 같아

면접 아닌 면접을 보기 위해 사무실로 갔더니

친구와 나 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관계자분이 보더니 좀 더 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살짝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사람 구하기가 어려웠는지 그 자리에서 합격(?)을 했다.

커보이지도 않은 광고회사인데 디자인에서 제작까지 해주면

그 제작물을 부착시켜 발주받은 회사로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제작물을 부착시키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다들 처음하는 일이라 겁도 나고 신경이 쓰였지만

시범을 보여주는 직원의 지시대로 따라해보니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3일을 넷이서 일을 마치고 며칠을 쉬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가서 보니 넷에서 셋으로 줄어 있었다.

일이 너무 더디어서 쓸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셋이서 같이 일을 한동안 하다가 어느날 젊은 엄마가 나오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잘린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하나 두었다는데

학교에서 파하고 오는 시간이 되고부터는 전화를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뭐하냐? 뭐 해놓았냐? 학원 다녀왔냐? 잘 했냐? 숙제는 뭐냐? 숙제는 했냐?

전화기를 어깨에 얹고 일을 하는데 내가 걸지 않으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듣는 사람도 거슬렸다.

걸려오는 전화에 일일이 대꾸해주며 웃다보니 일에 진척이 없었다.

실장도 전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뭐라 하지는 않지만

내가 봐도 심할 정도이니 돈 주고 부리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싫었겠지.

그렇게 해서 둘이 남아 바쁜 일을 해결해내자

처음에는 나이가 많아 일을 잘 할까 싶었는데 생각외라며

일이 생기면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다.

광고회사에 매일 일거리가 많은 것이 아니고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있어서

그럴때마다 며칠씩 어떤 때에는 몇 주씩 함께 일을 한 지가 벌써 1년이 넘었다.

간간히 생기는 적은 돈이지만 내 통장에 들어오는 것이 모여

이번 딸아이 여행길에 보탬이 되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작년 여름에는 일감이 많아서 사람을 더 구해야 되었다.

나처럼 며칠 하고 쉬는 일이 좋은 사람이 있나하면

아르바이트라 해도 꾸준히 하는 일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봐도 조건이 맞지 않아 애를 먹고 있길래

이웃에 누구네 엄마가 생각나  그이를 추천했더니

나를 소개했던 이가 잠시 머뭇거렸다.

나보다 더 먼저 알고 지내긴 했지만 공주병 기질이 다분한데다

무엇보다 일이 더딜 것이라고 했다.

행동이 굼뜨고 몸을 무척 아끼는 타입이라 동네에서 공주라 한다나?

글쎄,,깊게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사무실에서는 무척 다급해보이고 그렇다 보니 우리 퇴근시간이 길어졌다.

일을 나누어 해야겠기에 달가와 하지 않는 친구를 외면하고 전화를 했다.

약간 자신이 없는지 망설이기에 대답은 그쪽에 맡겨버렸다.

생각해보고 연락하겠다는 사람이 한참만에 왔다.

그렇게 해서 다시 세 사람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을 하면서 또다른 부분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일이 가끔씩 생기게 될 줄이야.

소개를 했으면 애시당초 자기가 했을 거라는 친구의 말을 들을 때마다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서로 도와가며 참아가며

남의 돈 먹기가 쉽냐는 위로를 해가며

며칠 하다보면 일이 끝나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같은 감정이 반복되는 몇 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내게 할당량이 정해진 일이 아니고 서로 분담해서 하는 일인데

 새 멤버가 매번 일량이 밀려서 나머지를 같이 하느라 시간이 늦어졌다.

몸을 아낀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설마 남의 일까지 그렇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세 사람 다 처음 하는 일이라 어떻게 하면 쉽고 능률적인지 모른다.

하다보면 쉽고 빠른 방법이 생기길래 서로 방법을 알려주고 따라하는데

이 사람은 절대 하지 않는다. 자기 방식대로 한다.

그 방식이 효율적이냐 하면 그렇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일이 늦어지고 결국은 남은 두 사람이 도와서 해결을 해야 되는데도

궂이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 하면 쉽고 편하지 않냐'고 하면

'얼마나 빨리 한다고 그러냐,  천천히 하면 되지.'

그러고는 삐쳤는지 집에 올 때도 혼자 뚜벅대며 앞서 걸어간다.

서로 좋자고 한 말을 고깝게 듣고는 사람을 황당하게 한다.

일이 힘들다기보다 사람이 피곤하게 했다.

그렇다고 사무실에 이야기하자니 사람 꼴이 우습고

매번 치닥거리 하자니 짜증난다고

친구는 스트레스 받아 나를 원망하고,나는 괜히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일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니 사무실에서는 셋이 잘 하는 줄 안다.

자기가 쓴 물건을 챙기지 않아 나중에 엉뚱한 곳에서 찾고

혼자서도 충분한 일을 꼭 같이 하길 기다리고

어쩌다 쓰레기 하나를 버려도 옆 쓰레기 같이 주울 줄도 모르고

손으로 줍기보다 발로 밀어내고 앉는 바람에

 '내 거 해 달라고 안할테니 자기 거는 자기가 좀 치우면 좋겠다.'고 결국 한마디를 했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작은 일에 속을 끓이는 나나, 남의 불편을 의식하지 못하는 그이나 매일반인 상황에서

누구를 탓할소냐.

못하면 도와주고, 버리면 치워주고, 어차피 할 일 내가 먼저 준비하고

좋은마음으로 시작하고 끝내면 될 것을

내 그릇이 좁고 뾰족한 탓인데 누구를 미워하리.

하면서도 문득문득 팥죽이 끓으니 어쩌란 말이냐.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들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건데 말이다.

 

병원에서 만난 그 분의 말씀이 되새겨졌다.

"자네는 복받은 거여..나는 암수술을 받았어."

누구는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았는데

순간의 역함을 이기지 못하고 속을 앓는 미련한 나를 놓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삶아도 삶아도 작은 좁쌀보다 잘 익어 푹 퍼진 보리알갱이가 되자'

쌀보다 보리가 더 많이 섞인 밥을 먹이면서도

어떻게 하면 목에 걸리지 않고 잘 넘기게 할까 근근하며

적당한 군불로 푹 퍼진 보리를 다시 한번 밥솥에 넣고 뜸들여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이고자 했던 엄마의 마음을 닮고

 그 한 알 한 알이 넉넉한 뱃심을 키우던 보리알갱이를 닮자고.

이 마음 언제까지 갈 지 모르는게 또 문제로다만...

 

**결국 남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이해가 다름에서 오는 소통의 불일치였습니다.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 또한 다를 것 없을 것이라 여기며

내가 싫었던 점 남에게 보이지 말아야겠습디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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