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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의 날에


BY 모퉁이 2006-05-15

 

어린이 날,어버이 날에 이어 스승의 날인데

옆집 꼬맹이는 학교에 가지 않는지 들락날락 분주하다.

아빠만 허락한다면 사흘 연휴련만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딜 가는지 신나는 발자국 소리가 계단을 밟아댄다.

스승에 대한 보답의 날이기 보다 휴교령이 내린 것이 더 좋은

아직은 철부지 꼬마지만 훗날 그리울 선생님은 계시겠지.

 

스승의 날과 동시에 성년의 날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며칠 전에는 구청에서 작은 딸 앞으로 축하전보가 배달 되었다.

요즘에는 그런 제도도 있나 보다.

남편 회사에서도 아이 앞으로 작은 선물이 배달 되었다.

딸아이 입이 유월 목단꽃 처럼 활짝 피었다.

 

큰 딸 한테는 성년의 날이라고 증표가 될만한 것을 건네지 못한 것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늘 걸려 있었다.

꼭 무슨 증표를 남겨야 된다는 법률적 명시는 없지만

남들은 뭐도 받았네 뭐도 주었네 하는데 나는 무심한 에미였고

아는 이가 대신 사 준 장미꽃 한 송이와 남편의 편지가 대신 했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지금 작은 딸이 성년을 맞았다.

 

옷을 한 벌 사줄까?

 화장품을 사줄까?

꽃?

좋아하는 메뉴 골라 식사?

생각한 것이 모두 소모적인 것들이라 나름대로 고심하여 결정 한 것이 팔찌였다.

악세사리로도 괜찮고 잘 간수하면 평생을 간직할 수 있는 물건이라 여겨졌다.

우리 부부가 끼고 있는 이 실반지도 결혼전에 서로 나눠 낀 요즘 말로

커플링인 셈인데 근사한 반지가 없기도 하지만 이 실반지가 있는 듯 없는 듯

편해서, 그런 의미로 팔찌를 하나씩 끼워주기로 했다.

맘 먹고 나선 종로 3가 귀금속 가게는 의외로 한산했다.

금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거래가 뜸한 시기라 한다.

아~하필이면 가격이 한참 드셀 시기일 게 뭐람.

그래도 먹은 마음이 변하기 전에 팔찌 두 개를 골랐다.

 

며칠 전, 남편이 문방구에 대해서 뭐를 자꾸 물었다.

문방구와 헤어진지 오래된 터라 요즘 거래 내역을 잘 모르긴 하지만

없는게 있겠냐고 했었다.

가서 뭘 사왔는지 그건 비밀이다.

그리고 어제 저녁,슬그머니 나간 남자가 대략 난감한 기색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오늘 아침,일어나자마자 화장실 다음으로 신문 보는 게 일과인데

신발을 신고 밖을 나갔다.

잠시 후,곱게 치장한 카네이션 두 송이를 들고 들어와 또 뭔가를 부스럭 거리더니

한참 꿈 속을 허부적 대는 아이들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온다.

그리고 나한테도 봉투 하나늘 내민다.

'간단하게 썼으니 나중에 봐라'

참말로 간단한 두 마디 옮겨 적기 아까워 숨겨둔다.

 

어제 저녁에 꽃집에 꽃이 동이 나,

 출근하기 전에 오겠다고 부탁을 해놨더니,

 이른 시간임에도 꽃집에서 약속을 지켜준 것이었다.

한아름의 꽃바구니도 아니고 한 송이 짜리 꽃 때문에

일찍 문을 열었어야 했던 꽃집 주인이 고맙다.

 

잠시 후 일어난 작은 아이의 눈거풀이 약간 젖어 있었다.

부녀간에 오간 내용을 나는 모른다.

큰 아이 하품 하며 나올 줄 알았는데 머리도 둥쳐 메고

안경까지 찾아 끼고 나온 것으로 봐서 편지를 읽은 모양이다.

둘 다 잠깐 말이 없었다.

 

사실,무뚝뚝하기로는 내가 더하다.

말 없기로 유명한 경상도 남자지만 잔정은 많아서

아이들 챙기는 일은 거의 남편 몫이다.

성년을 맞는 아이에게 글 한 줄 쓸 편지지를 찾아 문방구에 다녀오고

작은 꽃 한송이 구할려고 허둥거리는 모습에서

지천명을 넘긴 한 남자의 어깨를 적신 작은 사랑을 훔쳐본다.

세상에 부모는 이렇듯 드러내지 않은 사랑으로 사는 의미가 있나 보다.

살짝, 사는 재미가 돋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