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의 월급날이다.
매월 10일이면 날짜도 어기지 않고,아니 10일이 토요일이거나
일요일이면 미리 앞당겨서까지 챙겨받는 월급날이다.
셋방살이 할 때 같이 세 살던 셋방 동기가 그랬었다.
월급날도 한 달에 한 번,방 세 주는 날도 한 달에 한 번인데
월급날은 더디 오고 방 세 주는 날은 빨리도 온다고 해서
맞어맞어..하며 동변상련의 입맞춤을 했었다.
결혼 초에는 월급이 누런 봉투에 담아져 남편이 직접 가져왔지만
언제부턴가 은행 통장으로 입금 되면서 남편들의 한숨소리가 깊어졌다.
남자들은 돈버는 기계라느니...
한 달 내내 일하고 돈 구경도 못 해본다느니..
남자들은 월급 명세서에 적힌 금액만 읽을 뿐 한 달 동안
쓴소리 단소리 들어가며 치사한 꼴(?)봐가며 일한 댓가를
가슴팍에 품어와 당당하게 내놓던 좋은 시절이 가버린 것이다.
누구는 그랬다.
이것 떼고 저것 떼고 집에는 빈봉투 들고 오다가
꼬박꼬박 은행으로 압수하듯 뺏어드니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다고..
여태 단돈 일 원도 어기지 않고 챙겨다 주었고
자기 명의의 통장을 마누라한테 넘겨 준 지 이십 년이 넘도록
월급의 정확한 액수도 모르는 남편이 어떤 때는 무심하게 여겨졌지만
나를 믿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니 고맙다.
남편의 고생댓가로 받은 월급 중에 일부를 잡비 개념으로 다시
월급식으로 얼마를 준다. 그 돈으로 가끔 외식도 시켜주고
아이들에게 나 모르게 얼마를 찔러 주기도 한다는 것을 슬쩍 외면한다.
월급날이면 유모차를 밀고 은행으로 가는 것이 일과 중에 비중이 컸다.
붐비는 은행 창구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인출한 돈은 일주일 안에 거의 소진되었다.
방 세 주고,쌀 사고,연탄사고,보험료에,양념거리에 세제에 분유값에
각종 세금을 떼고 나면 돌아올 월급날이 무척 길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저녁찬이 푸짐했다.
멋적은 웃음 속에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섞어 보내기도 하고
분주한 하루 속에서 돈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했다.
요즘은 월급날에도 은행에 잘 가지 않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금은 자동이체이고 왠만한 것은
신용카드로 결재하다 보니 현금을 미리 찾아둘 일이 줄어 들었다.
오늘도 집에 앉아서 전화기를 들고 송금하고 정리를 하고 보니
월급날임을 실감하지 못했다.
다 저녁에 문득 부실할 저녁상이 생각났다.
오늘같은 날,크~소리나게 소주라도 한 잔 권해야 될텐데
눈치 없는 마누라는 하루 왠종일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사 퍼뜩 정신이 드나 부다.
꽁꽁 언 오징어라도 해동시켜 매콤한 오징어 볶음이라도 해야겠다.
언젠가 지친 저녁 상에 올린 해물찜과 소주 한 잔에 반한 남자의 혼잣말
'이 맛에 사는 거지..'가 뱅뱅 거려 잠깐 어지럽던 날이 있었더랬지..
그래..오늘 사는 맛을 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