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년전,이사를 와서 보니 동네 규모에 비해
노래방이며 호프집이며 당구장 등이 많았다.
그 중에 특히 많은 것이 [전월세 방있음]이란 광고였다.
가족끼리 깔끔하게 외식할 수 있는 음식점은 없고
인테리어 무시한 허름한 삼겹살 집이 많은 이유가
두 곳의 대학 때문이라는 것을 얼마 후에 알았다.
대학가 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아무튼 대학교가
두 군데 있다보니 학생들 상대의 가게가 많았고
자연 가족 단위의 외식도 그들 무리에 끼일수 밖에 없었다.
네 식구가 어쩌다 삼겹살이라도 구우러 가는 날이 마침
학생들의 동아리 모임날과 겹치는 날이면 고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소란스러웠지만
그때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가기 전이라
너희도 대학에 가면 저런 재미도 느낄 것이라며 그들의 호기를
부추겨 주었던 적이 있다.
그로부터 여섯 해가 지난 지금 그 분위기는 여전하고
그 분위기에 익숙해진 우리도 그들 틈에 끼여 고기를 굽고
밥을 먹고 소줏잔도 나누고 옆에서 떠들건 말건 우리들의 대화도 나누니
주변은 변한 것이 없는데 우리가 변한 것이었다.
대학은 날로 번창하여 새로운 학과가 신설되었는지 전에 없던 건물이 들어서고
동네 모습을 바꿔놓을만큼 변했다.
대학 운동장에서 매일밤 달리기와 걷기로 체력단련을 하던 주민들이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대던 4년 전, 대학 운동장에
대형 스크린을 걸고 다같이 월드컵 응원을 했던 운동장이
지금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운동장 문턱은 높아져서
주민들은 다른 학교 운동장으로 옮겨야 했다.
그래도 꾸준히 대학 신입생은 늘어나는지 곳곳에 신축 원룸이 들어서고
정해진 벽보란도 없이 [원룸있음][전월세 있음]은 갈수록 늘어났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도 원래 세탁소가 있었는데 어느날엔가
이전안내가 붙이더니 세탁소가 원룸으로 변해 학생들을 끌어 모았다.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 봉투가 제멋대로 나와 있기도 하고
골목 외진 곳에는 전 날 뿌려놓은 밤의 흔적들로 동네가 지저분해
보인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도 계신다.
젊은 학생들이 다 그랬다고 볼 수는 없으나 신학기가 되면 각종 모임이
많은지라 한동안 동네는 술판이 끊이지 않고 비틀거리는 신입생들을 많이
볼 수 있기는 하다.
유학 보낸 부모님들 이런 실태를 보면 내 자식은 아니 그럴 것이라
믿고들 계시다가도 혹시..싶은 우려를 짐작케도 한다.
나역시 과년한 자식을 키우는지라 남의 자식 쉽게 뭐라할 처지도 아니다.
어제 모처럼 등산을 하고 집 가까이 왔는데
털코트로 무장한 부부가 어느 집 벽을 쳐다보며 열심히 전화를 걸고 계셨다.
전월세 광고지 앞이었다.원룸 같으면 쉽게들 찾을 수 있는데
전월세는 대개 위치를 알아내야 찾아 갈 수 있다.
어느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서울대학(?)에 자식을 유학 보내게 되었나 보다.
원룸은 몇 천만원은 있어야 하고 전월세도 만만찮은 가격이다.
공부 잘 해 좋은 대학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부모님들은
그날로 허리띠 졸라매야 하는 힘겨루기에 들어간다.
매달 보내는 생활비에 학비에 용돈이 등골이 휜다고들 한다.
연연생 두 아들을 서울로 보낸 친구네는 몇 년 동안
적금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고 했다.
두 아이 다 하숙도 자취도 모르고 집에서 다니는 나를 보고는 그것도 복이라고 한다.
가난한 부모맘을 아는 효녀인 게지..흣흐..
신학기가 가까우면 [방 두 개 입식 주방 욕실 있음]
[큰 방 하나 욕실 따로 있음 가스 보일러] 그 밑에 친절한 전화번호가
적힌 방이 남의 집 벽을 잠식하고 요즘 보기 드문 전봇대는 한술 더 뜬
[과외]광고까지 붙어서 몸살을 한다.
대학은 날로 늘어나고 대학 건물은 매일 신축에다 증축에다 소음을
뿜어내건만 대학생을 둔 부모 마음은 날로 느는 등록금에 뒷돈 대느라
오늘도 한숨만 길게 나올 뿐이다.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볼 여유도 없이
이번 주 안으로 마감되는 딸아이의 등록금 고지서와 얄팍한 통장을 놓고
맥없이 나오는 푸념을 풀어놓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