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에 홀린듯이 지난 일주일이었다.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주근깨가 송송 오른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가.
그랬던 그 아이가 지난 주말에 결혼 청첩장을 보내왔었다.
벌써 15년이 지났으니 그래..시집 갈 나이가 되었지.
내 나이 스물일곱엔 아이를 하나 낳은 엄마였으니까..
내게도 곧 닥치게 될 대사인지라 어느때 보다 예사로이 봐 지지가 않았다.
남의 딸을 시집 보내고 그 길로 친정길에 올랐다.
분양받은 아파트에 동생이 이사를 가기로 하였기에
마지막 정리를 해주러 갔었다.
저녁 늦게 도착하여 다음날 아파트 열쇠를 받아 동생에게 넘겨주고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치고 다음날 하루를 더 묵을 계획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거나 이르다고 생각되는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항상 불안하다.
그날도 잠이 들 무렵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은 가슴이 오그라드는
아픔을 전해주었다.
사촌시동생의 사망소식이었다.
아버님 형제는 단 두 분이신데 큰댁에 2남 3녀 우리집에 3남
합이 8남매중에 제일 막내인 시동생이 저녁 잘 먹고
놀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옮겼으나 소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과 두어시간 남짓하는 시간에 생사가 갈려버린 셈이었다.
심근경색.
이 주일 전에 남편의 직장 동료가 똑같은 일로 사망하여 충격이 컸었는데
이번엔 내 가족 중에 일어난 일이라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길로 이박 삼일을 장례식장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삼오제를 지냈다.
형제간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었는지 서로 미안하다며 통곡하는
시누님들에게서 지난 세월의 회환이 눈물로 겹쳐와서 보는 이의
눈을 발갛게 만들었다.
먼길을 달려와 주신 아주버님의 어깨 위로 흔들림이 심했다.
사촌간에 빚보증이 잘못되어 아주버님은 아파트도 날렸고
여러가지 상황이 좋지 않았던 기억들로 한동안 소원했었던
기억까지 망자 앞에서는 부질없는 어제가 되어 버린 것을...
잘 살아보겠다고 아둥대는 형제를 돕다가 같이 파산한 형제간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던 서운함을 풀기도 전에 이런 일을 겪다보니
이번 자리가 화해의 자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망자에게
고마워 하기는 너무 아쉬운 마흔일곱이 서러웠다.
사촌의 죽음이 곧 내 형제의 죽음일텐데 그래도 내 형제의
추워보이는 어깨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지..참..
아주버님의 조끼가 허술해 보여 작은 키가 더 작아보였던 것은
나만의 눈매움이 아니었었나 보다.
형님 잠바 하나 사주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허투이 넘길 수가 없었다.
잠바 하나 못 사 입을 형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 사 드리고 싶다는
말에 발품을 팔았다.
하시는 일을 감안해서 가볍고 따뜻한 파카를 한벌 사서 우체국 택배로
보냈다.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삼춘의 떼옷도 얼른 물이 들어 파란 풀색 옷으로 갈아 입어
춥거나 더워 보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발 딛고 얼굴 내밀고
사는 세상에는 어제 오늘 무척이나 추운 날씨인데 땅속 세상
하늘나라의 영혼을 떠올리자 코끝에 매운기가 찡하다.
인생무상이란 말을 시름없이 흘렸던 지난 며칠이었다.
가슴아! 이 허허로운 가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