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21일.
아침부터 옆구리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첫경험이 있던지라 예정일이 닷새는 남았지만 예감은 자꾸 '혹시 오늘..?'
그러면서도 널부러진 아침 정리를 마치고
누운 자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시계를 응시했다.
규칙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예정일이 나보다 두 달 늦은 언니가 부른 배를 안고 달려오고
뒤늦게 엄마가 오셔서는 금방 나올 기미는 아니라 하셨다.
준비해 둔 보따리를 머리맡에 내려놓고 때(?)를 기다리다
내 발로 걸어서 조산소에 갔다.
첫아이도 그랬고 둘째도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침 11시경부터 시작된 진통은 조산사 할머니의 예견대로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응애~소리와 함께 첫 고통은 멎었다.
첫아이때에는 남편이 출장 중이어서 혼자 낳았는데
둘째는 요즘처럼 직접 보고 같이 겪지는 않았지만
병실 밖에서 큰아이와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고 했다.
조산사 경험 30년이 넘은 배테랑 할머니는 아이와 나를
안심시켜 놓았다.따끈한 미역국으로 출산 후 첫국을 마시고
늦은밤 집으로 돌아오니 주인댁 아주머니께서 미역국을 한 솥 끓여놓으셨고
연탄 아궁이를 활짝 열어 방을 데워놓으셨다.
해마다 이 날이면 아주머니 생각이 나는데 지금 그 아주머니
이 세상에 아니 계신다.
**
'언니한테 뭘 사 달라고 하지? 그런데 뭘 사줄까 묻지를 않네.'
'언니가 요즘 궁한 모양이다.너무 보채지 마라.'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엄마!내가 명동칼국수 사 줄테니 나중에 만나.명동교자에 칼국수와 만두가 맛있어'
'명동교자가 어디 있는데?'
'명동교자가 명동에 있지 어딨긴..'
'그럼 딸랭이 한테 점심 한 번 얻어먹어 볼까나..'
팔짱을 끼고 둘이 명동길을 걸었다.
저만치 줄을 서 있는 집이 만두와 칼국수로 유명하다는 그 집인가 보다.
솔직히 줄을 서서까지 사 먹는 체질이 아닌데..
둘이 앉을 자리는 바로 비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소문난 집 치고 맛있는 집 못 봤다고 미리 말하지 않길 잘 했다.
출출한 탓인지 만두도 깔끔하고 칼국수는 국물맛이 시원했다.
입가심으로 챙겨주는 자일리톨 껌 하나까지 챙기고
이층 나무 계단을 내려와 젊은이들로 넘치는 명동거리를 걸었다.
저 집엔 찜해 놓은 운동화가 있고 저 집에는 모자가 예쁜 게 많고
이 집에는 점퍼가 괜찮던데 비싸서 생각중이고
저 집 신발은 수제화라 50프로 세일해서도 이십만원대이고
저 옷은 엄마가 입어도 되겠다며 앞에 세워 보고
큼지막한 가방을 하나 살 거라며 기웃거려 보는 것이
이건 점심은 미끼이고 낚시를 하러 온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가을 부츠가 내 눈에 들었다.
아이도 맘에 들어하는 눈치다.
'신어봐'
'엄마가 사 줄려고?'
'신어보랬지 사 준댔나?'
'히히..'
비싼 칼국수 얻어 먹었다.
큰아이 앞으로 배달된 물건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구두를 주문한 모양이었다.
작은아이의 생일이기도 하지만 혼자 사 준 신발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사 주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배달된 그 신발값을 내가 대신하기로 했다.
생각지도 않았다는 듯 큰아이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른다.
취업을 해서 용돈 관리는 알아서 하길래 그동안 나도 무심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어느 누구 특별대우도 없지만 차별을 느끼게 하면 안되겠지.
19년 전 열 달동안 품고 있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 놓고
두 아이의 엄마로 내 인생의 봄날같은 환희를 느끼던 그 날
스물여덟의 젊음이 세상 겁없이 소리지르던 바로 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