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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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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BY 모퉁이 2005-05-30

 

내가 가는 곳 그 곳에는 조그만 암자같은 절이 하나 있다.

여스님 두 분이 예불을 올리고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절인데

언제부턴가 이 절간이 조용하다.

 

초파일에는 연등이 달려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절간에서 들려오던 법구경 소리도 들을 수 없고

빨랫줄에 널려있던 하얀 행주도 안 보이고

덩그마니 놓여있는 평상에는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앉아서

물 마시고 쉬어 가는 모습만 간간이 보일 뿐이다.

 

층층 돌계단 위에 떨어진 아카시아 꽃이 누렇게 바랜채 뒹굴고 있다.

호박 구덩이에 호박잎도 몇닢 나왔고

고추밭에는 고추꽃도 피었고, 취밭에 취나물은 손을 타지 않아서

이미 쇨대로 세어 버려 뻣뻣해졌다.

씀바귀 꽃이 돌계단 사이에서 삐죽히 솟아 있었고

돌나물도 대롱이 길게 자라 모가지를 내밀고 있었고

연할 때 한번 뜯어다 쑥국을 끓일까 싶어도 참았던 쑥이

숲처럼 자라서 잡초와 어울려 살고 있었다.

 

스님은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노스님의 몸이 불편하신지 외출했다가 절까지 올라가시면서

쉬는 걸음이 잦아 농담처럼 나눈 이야기가 있었다.

[스님~이러다가 오늘 해 떨어지겠습니다.]

[그래그래.. 내 운제 저까지 올라가겠노.아휴~]

 

고향이 진주 어디메라시던 스님의 짙은 사투리와

격없이 나누던 대화가 언뜻 떠올랐다.

고양이 밥이라며 챙겨 들고 오시던 비닐봉지를

대신 들어드리마 했더니 두 말 않으시고

[저 우에 평상에 던져놓고 가라..]하시더만.

오늘도 그 평상에는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쉼터가 되어주건만

스님은 어디로 가셨지?

 

"큰바가지로 물을 퍼서 작은 바가지에 담아 드세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샘물 앞의 안내문이다.

절 문을 잠겼지만 절간의 샘물터는 열려 있어서

커다란 바가지로 물을 퍼서 작은 바가지에 옮겨 부어 마시라는

주문대로 찬물 한 잔 길게 마시고 평상 위에 떨어진

시든 아카시아 꽃잎을 쓸어내고 있는데

또 다른 등산객이 와서 피곤한 다리를 내려놓고 샘물을 마신다.

풍경소리가 손님맞이 하듯 댕그랑 거린다.

그런데 정말..스님은 어디로 가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