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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신


BY 모퉁이 2005-04-11

불경기 일수록 여인네들 치마가 올라간다고 한다.

불황 속의 침침한 분위기를 패션에서나마 밝게 해보려는 심리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올해는 치마가 올라가면서 부츠가 유행이다.

날씨는 겨울 속의 봄 같은데 마음은 이미 얼어 붙을대로 얼어서 한겨울이다.

 

올 해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부츠가 참 앙징맞고 이뿌다.

무스탕같은 거죽에 꼬불하고 짧은 털이 있어서 따뜻하기도 하겠고

납작해서 편하기도 하겠고,그런데 가격은 좀 세다고 한다.

모조품이라도 좋다 유행 대열에 끼어 보자는 여학생들 너도 나도

 이 부츠를 많이 신었다. 돈 되면 우리 딸도 한 켤레 사주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는 곳의 양 길가는 신발집이 많다.

여대가 있어서인지 거의 여학생 취향이어서 내가 신을만한

신은 없다.슬리퍼도 없다.

오늘 그 집 앞을 지나오다 참 재밌게 생긴 신발을 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부츠를 반버선처럼 싹뚝 잘라놓은 듯한 신발인데

꼭 옛날에 울아버지가 신던 털신처럼 생겼다.

아니,그보다는 좀 세련되었지만 생긴게 비슷하다.

 

그때는 검정색 고무재질에 누리끼리한 털을 둘러싼  어른용이었고

요즘은 색깔도 다양하고 모양도 귀여워서 어른은 신기가 좀 버거운

새파란 젊은이용 이라는 점이 다르다.

 

아니나 달라..버스를 탔더니 예쁘장한 여학생이

감색의 털신을 신었는데 스타킹 위에 비친 발등이 매끄러운게

신발과 잘 맞아서 이뻤다.

청바지를 입었는데도 어울린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때

나는 처음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르바이트 라는 것을 했다.

옆집 아줌마네가 시장통에서 닭장사를 했는데

철망 속에 닭을 가둬두고 소비자가 눈짓이나 손으로 찜'한 닭을 그 자리서

뜨건 물에 튀겨서 털을 뽑고 내장을 정리하여 파는 장사였다.

 

그 집에는 갓난배기가 있었는데 이 아이를 할머니가 보다가

애기가 울면 한번씩 옆집 아줌마네 가게에 업고 가서 젖을 한 통 물리고

다시 업고 오면 되는 일이었는데 무슨 맘이었는지 그걸 내가 한다고 했다.

 

그 일을 몇일 했더니 아줌마가 내게 빨간색 털신을 한 켤레 사주셨다.

1970년도 말인지 71년도 초 쯤이었는데 그때 유행하던 만화 그림이

아톰이었나 마루치 아라치였나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참 유치하게도 그려진 그 그림이 신발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상징적인 역할을 하던 빨간 털신.

(그때 우리의 가방이나 신발 또는 내복,양말 등은 여자는 빨강,남자는 파랑으로 나뉘어졌음)

 

개학을 하고 멋지게 털신을 신고 학교에 갔다.

그때 학교에서는 고전읽기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같은 종류의 책을 읽는 사람끼리 같은 교실에 모여서 읽었다.

나는 잠시 다른 교실로 이동하여 삼국유사였는지 삼국사기였는지

아무튼 책을 읽고 오니 내 책상 구멍 뚫린 서랍에 고이 모셔 두었던 털신의

고유 상징인 만화 그림이 뭉뚝허니 사라지고 그 자리엔

짧고 넓적한 하얀 고무줄만 실밥이 붙은 채 남아 있었다.

 

아..어느 고약한 넘이 그랬는지 힘도 좋지.

내 털신이 탐나고 심술이 나서 그랬다 하더라도 떼낸 그림이라도 두고 가지.

굵은 이불실이라도 꿰어서 기워 신어도 될 것을 그것마져 가져가 버리다니..

 

막 6학년에 올라갈 나이의 기집애가 안 신고 말지

보기 싫게 허연 실밥이 붙은 신을 신을 수가 있어야지.

안타깝게도 나의 첫 아르바이트 댓가는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털신을 보면 나는 지금도 그 기억을 한다.

 

직장생활을 5월에 시작했는데 그 해 겨울 월급을 타서

나는 아버지께 노란털신을 한 켤레 사다 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해마다 나는 털신을 사다 드리겠노라 했었는데

세번째 털신을 사 드린 후 나는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그 털신이 다 닳기도 전에 아버지는 먼 소풍길을 떠나셨기에...

 

털신을 보니 내 털신 생각도 나고 아버지 털신도 생각나고

두서없이 정리되지 못한 글로 내 하루를 채워놓아 본다.

2004-12-02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