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 모시면서도 가뿐하게 여행 다니는 친구를 보면 저것도 복이려니...했다. 결혼하면서 내 스스로 만든 울타리 밖을 내쫒아 보지 못했던 나는 처음에는 아이들 때문에,챙겨야 되는 어른(남편)때문에가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애들도 커서 어느정도 시간상 여유가 생겼건만 나가는 길을 몰라 그런지 그것도 여의치가 못하다.
며칠전,남편이 출장일정을 알려준다. 자그마치 7박 8일이라 한다. 오~예~! 드뎌 나도 자유부인이 되는구나.. 7박 8일동안 뭐하지? -친정에나 다녀올까?- 이건 고3짜리 딸 때문에 안될것 같다. -낮시간 아니면 안되던 나 때문에 기회 엿보고 있던 친구를 만나볼까.- 친구라고 꼽아봐야 손가락 서넛 접으니 끝이다. 이럴때 고향 떠나 온 것까지 서럽다.
일주일 동안 이틀은 내 본래 스케쥴이 있으니 그대로 행하고 남은 5일 알차게 보낼 계획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겉으로는 당신 없는 7박 8일을 어찌 보내냐고 속 보이는 소리를 해댔다.
오랫만에 출장가방을 싸고,아쉬운 듯한 입맞춤으로 배웅을 하고 보다 만 신문을 접으면서 자유부인 첫날을 맞이했다. 평소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집안 일을 마치고,예정된 서예교실에서 글을 쓰고 지인들 만나 이야기 나누고,그렇게 하루는 잘도 갔다.
자유부인 둘쨋날,즉 어제. 아침 10시가 되도록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는데 시간은 외양간에 붙들린 소 고삐처럼 정지된 것 같이 느리다. 걸레를 들었다 말았다,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식탁에 펼쳐놓은 화선지 때문에 밥은 싱크대 앞에 서서 한술 뜨고 먹물은 마르고 붓도 마르고,거울에 비친 얼굴은 누렇게 뜬 것 같다.
자유부인 세쨋날,오늘 주중 행사인 볼링장에 가는 날이어서 누렇게 뜬 얼굴에 생기가 돈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도 하고,입술도 엷게 발랐다. 어제와 같은 아침 10시 인데 집안 풍경이 다르다.
운동을 마치고 윤중로 벚꽃구경이나 갈까 했는데 그것도 맞출 사람이 없다.오늘따라 다 바쁘댄다.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눈이 부신다. 성질 급한 사람 벌써 샌들을 신었다. 검정색 내 신발이 무척 덥게 보인다. 걸친 청쟈켓도 무겁다. 딸기라도 한팩 살까 하다가 맨손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집어 먹을게 없다. 선 걸음에 빵을 만들어 점심을 대신했다. 옆집 애기엄마 몇조각 들려주고 이후 바깥에 나가는 일도 없다.
또다시 적막감이 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오늘 뿐이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애들 늦게 오고 남편 퇴근 늦는 날이면 으레 이런 날 이런 시간이었는데 또다른 허전함이 있다. 실내화가 이쪽에 한짝 저쪽에 한짝 있어도 가지런히 놓을줄도 모른다. 저녁 먹고 온다는 아이의 전화에 이젠 쌀도 씻기 싫어진다. 두어숟갈 남은 찬밥에 김치 올려 넘겼더니 목이 메인다. 물만 몇모금 마시고 빈그릇은 물에 담가놓고 또 앉아 버린다.
자유부인 되면 날아다닐 줄 알았다. 자유부인 되면 노래가 나올줄 알았다. 언제는 시간날때 보자던 친구도,언제고 놀러 오라던 사람도 시간맞춰 바쁘고 날짜맞춰 더 바쁘네.
이제 3일째인데,아직 4일은 더 남았는데 남은 자유부인 유예기간 동안에도 어떠한 일도 생길것 같지 않아서 오랫만에 깔아놓은 멍석,이쯤에서 말아 원래 자리에 세워 두어야 되려나 보다. 멍석 깔아놓으면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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