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하는 남자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요즘처럼 30대 퇴출시대에 정년을 채우면 천년기념물 이란 소리를 듣는다는 세상인데 정년을 세기가 더 빠른 나이의 남자가 이번에 승진시험에 도전하느라고 한동안 책과의 씨름을 했었다.
딸녀니 대학 갈 무렵에도 한 번 고배를 마신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엔 초연하게 주어진 과제처럼 해보마고 하더니 몇일 전에 찹쌀떡 하나 입에 물고 집을 나간 남자는 뭔가 후련한 느낌이라고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는듯 했다.
헌데 이번에 승진이 되면 한가지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 인사이동을 감수해야 하기에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지금 아이가 대학 2년이고 고등 2년인데 이 시기에 이사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숙제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입학한 학교에서 졸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큰아이 고2, 작은 아이 중2때 전학을 했는데,전학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방에서 전학을 오니 문제아가 아닌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던 3년 전인데 또 다시 그런 혼란을 겪어야 한다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큰아이야 대학생이니 그렇타 치더라도 작은아이는 이제 한참 예민할 때인데 또다시 전학을 하게 되면 그에 미치는 여파가 만만찮을텐데.. 이래저래 고민이 엇갈리는 요즘이었다.
태연한척 아무일도 없는 듯 남자는 늘상 그대로였고 나는 언뜻 지나가는 소리로 '무슨 소식 없냐'고 묻곤 하였는데 아직 없다는 말만 하고 덤덤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나도 덤덤한 척 아무말 하지 않았다.
어제,저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술자리가 있어서 늦겠다는 통보가 있을때까지 나는 그런가보다..만 했지 아무런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혼자 저녁을 먹고 우수관을 타고 내려오는 빗소리가 제법 굵직하다 느끼면서 거실문을 꼭 닫아버린 저녁 후 한참 시간.
남자가 왔다. 거나하게 한 잔 했는성 싶은데 정신은 말짱하다.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 그때사 웃는다. 섭섭酒를 한 잔 했다나..
누가 이사를 가나,누가 발령이 났나 뭐가 섭섭하다고 섭섭주야? 눈치 없는 마누라 20년을 옆에 두고 살았던 남자 참 답답했을 것 같다.
잘 된 일인지,서운할 일인지... 이번 승진에서 탈락되었고,주변사람들이 위로주 한 잔 산 모양이다.
그때사 한숨을 쉬면서 그간의 나름대로 고충을 말한다. 승진이 되어서 인사발령이 나게 되어도 걱정이었다 했다. 아이들 학교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니, 나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혼자 가느냐,아님 데리고 가야 하는데 전학문제도 그렇고 두 집 살림을 하게 되자니 돈도 문제이고 이리저리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사무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얼른 자리를 비워주어야 또 다른 사람에게 승진의 기회가 주어질텐데 그렇지 못함이 스스로 미안했던 모양이다.
위로주라고 산 사람들이 정말 남편을 위로한 자리였는지 아니면 원망스런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며 자신을 탓한다.
시장 나간 길에 커다란 빈대떡을 한 장 사왔었다. 막걸리라도 한 병 사갈까 하다 냉장고에 소주가 있어서 저녁에 소주라도 한 잔 할까 했었던 내 마음이 괜히 그렇게 통할 줄이야. 다른 날 같으면 어림없을 일이지만 어제는 많이 봐주었다고 할까. 빈대떡 데워서 소주 한 잔 나누었다. 이거야 말로 진정 위로주 아니겠소?
사는 일이 내 맘대로 다 될 일이라면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당신 그릇이고 내 몫이라면 어찌하겠어요.언젠가 좋은 소식 들려줄 날이 있지 않겠어요? 그렇지 못한다 해도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꿋꿋하게 지금처럼 버티어 나가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출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니 혹시라도 내가 속상할까봐 하는 걱정일랑 말아요. 나보다 더 많이 상심했을 당신이 되려 걱정되네요. 나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여길랍니다. 당분간은 아이들 곁에 있어줘야 될 시기이기에 지금 움직인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거든요.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기도 합니다.
어제와 같은 아침이 왔고,여늬날과 같은 시간에 같은 곳으로 발걸음 옮기는 남자의 뒷모습이 어째 나즈막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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