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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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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친구)


BY 모퉁이 2005-04-11

30 년 지기가 있습니다.

열다섯 단발머리 소녀에서 만나 그보다 더 큰 아이를 둔

중년이 되어버렸습니다.

 

3년 전,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지 한달여 되었을 무렵에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는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어디가서 몇일이라도 쉬었다 왔음 좋겠다..'라는 말에

그러지 못함이 무척 안타까웠었는데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났을까..

그 친구가 서울 큰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겁니다.

 

벌써 온지 3일이 되었다는데 왜 연락을 안했냐니까

몇 일 쉬면 괜찮을거 같아서 퇴원 무렵에나 한 번 보고 갈 참이었다고

서로 생활이 있으니 괜한 번거로움 주기 싫었다는 것은

나에 대한 배려였음에도 나는 서운했었지요.

 

몇 일 쉬면 괜찮겠지..?

아~이 말이 정말 말처럼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입원했다는 병원에 찾아간 첫 날.

얼굴과 몸이 많이 부었다는 느낌이 확 들었고,황달증상이 내 눈에도 보였습니다.

원래 하얗던 피부가 노리끼리 하다고 할까요.

그리곤 발음이 고르지 못함을 나는 느꼈습니다.

첨에 전화로 말할 때에는 마스크를 썼거나 입에 사탕을 물었거니 했었거든요.

대화 얼마 하지 못했는데 피곤해 해서 자는 모습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이틀째.

김밥을 사갖고 갔습니다.

김밥 두조각을 채 먹지 못하였는데 피곤해 했습니다.

대화? 얼마 하지 못했습니다.얼굴만 보고 있는데

그 옛날에 어릴때 먹던 김치국밥이 먹고 싶다 했습니다.

그것 좀 끓여다 달라고 하길래...

 

세째날.

일찌기 김치국밥을 끓여 보온병에 담고 있는데 간호차 와 있던

동생이 전화를 했습니다.얼른 그 김치국밥 갖고 병원으로 와 달라고요.

병원밥을 거절하고 내가 갖고 갈 김치국밥을 기다린다는 겁니다.

집에서 병원까지 1시간 20분거리.

대충 챙겨들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날 나는 김치국밥 뚜껑도 못 열었습니다.

아니,친구랑 대화 한마디 못했습니다.

하룻밤 사이 몸은 거구처럼 부었고,눈물에서도 노란물이 나왔고,말도 못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있었습니다.

 

전격성 간염

친구의 병명입니다.

 

이식만이 살 길이라 했습니다.

남동생의 간을 이식받기로 하였습니다만,까무라쳐 혼수상태에 들어간 친구는

중환자실로 옮겨지고,수술을 받아도 가능성은 언제나 그렇게 말하듯이

확신할 수 없으나 50%의 희망에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3일을 중환자실에서 있다가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무균실로 들어갔습니다.

20여일 무균실 생활을 하는 동안,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옆에 있어 주는 것이었는데 무균실이라  그또한 쉽게 받아주지를 않았습니다.

티비에서 보던 파란색 가운을 입고 마스크에 모자에 장갑을 끼어야

병실에 들어갈수 있었고,그것도 오래 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환자가 면역성이 없으므로 감염을 우려하는 것이었지요.

 

남편은 생계와 병원비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했었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지방에 있는터라 간병인을 써야했었지요.

 

그 이후로는 일인실로 옮겨 3개월을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그 해 결혼기념일과 음력 생일이 하필 같은 날이어서

병원에서 두가지 기념일을 맞았습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12월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3년 전 겨울은

그녀에게 무척 긴 겨울이었습니다.

가을이 한참 익어 가던 때에 느닷없는 병마에 찾았던 병원에서

그해 겨울을 보내고 설날도 보내고 봄이 올 무렵인

다음해 2월 말에 퇴원했습니다.

 

공여자였던 동생은 회복이 빨라서 일찍 퇴원을 했었고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생활전선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

 친구역시 회복이 잘되어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평생 약을 복용해야 되는 환자이지만 겉으로 봐서는 환자 같지 않습니다.

엄청난 수술비용과 공여자가 없었더라면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참 안타까울 뻔 했지요.

지금은 3개월에 한번씩 정기검진차 먼걸음합니다.

 

지난여름에 다녀갔을 때에는 덕수궁을 갔습니다.

공원 벤취에서 그러더군요.

이번에 장애등급을 받았다고요.

간이식자에게도 장애인수첩이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것도 일종의 혜택이라 할까요.

 

오늘은 경복궁에 갔습니다.

은행잎이 소복했지만 비에 젖어 들어누운 모습들이라 좀 서운했어요.

모처럼 만난지라 고궁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날씨가 도움을 못 주네요.

점심도 먹고 인사동 거리 걷다가 오래된 찻집에서 대추차 한 잔 마시고

비행기 시간 맞추어 보내주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비행기 삯이 반값이라고 웃네요.

쓸쓸하게 들립디다.

공항가는 지하철 태워보내고 올 들어 그녀와의 세번째 만남을 접고 왔습니다.

 

 

 

 

 

 

2003-11-07 1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