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작은 해안을 끼고 있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작은 갯벌도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바지락을 캘수가 있었다. 물 때를 맞춰서 어른들은 조개를 캐서 파는 사람도 있었고 끼니 반찬을 자급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도 더러 많았다. 엄마를 따라 몇 번 따라 가 본 적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나보다 10살 아래인 동생을 업고 있다가 동생이 울면 엄마가 젖을 물리고 배부른 동생을 또 업고 있다가 엄마랑 함께 집에 오곤 했었다. 이 동생은 일곱살 때 까지 젖을 먹어서 언니한테 많이 혼났다.
나도 발벗고 들어가 바지락을 줍고 싶었지만 등에 업힌 동생이 버둥대어서 내 힘으로는 두가지 일을 할수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으니 아마 이맘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동네 친구들 몇몇이 작당을 하여서 엄마 몰래 조개를 잡으러 가기로 하였다. 소쿠리 하나,바가지 하나,그리고 호미를 챙겨들고 10리길을 걸어서 바다에 갔다.썰물과 밀물의 시간이 날마다 다르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엄마랑 같이 갔던 시간인데도 물이 빠지지 않아서 우리는 둑(방파제)에 앉아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했었다. 그러고 보니 조개를 잡으러 온 어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후,어른들이 모여들자 기가 막히게 물이 빠지고 뻘이 나타났다. 재밌게만 보였던 조개잡이,,그거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엎드려 호미질을 하여 동그란 그 무엇을 잡고 보면 돌맹이기 일쑤고 집고 보면 입벌린 죽정이 조개였고,밭을 메였으면 몇 이랑을 메였을 시간이지만 소쿠리엔 입이 쑥 빠진 조개 몇톨이 찍찍 물을 쏘아대고 있었다.
물이 다시 밀려오고 뻘은 사라지고 다시 바다가 되었다. 어른들을 따라 우리도 물 밖으로 나왔고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소쿠리는 빈 소쿠리고 옷은 뻘이 묻어 야단이고 손톱엔 시커먼 뻘이 들어가 석달열흘 물 구경도 못한 기집애 같았다.
뙤약볕은 어찌나 내리쬐든지,,머리속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얼음과자 (아이스케끼)하나 사 먹고 싶구만 돈도 없고 차비도 없고 왔던 길 다시 걸어서 터벅터벅 걷는데,플라타너스 가로수 그늘이 무척이나 고맙다. 가로수 따라 걷다 쉬다 플라타너스 이파리 두어장 낚아챘다. 두개를 꽂아서 머리에 이니 모자대신 작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마음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일곱식구 먹을 된장찌게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조개를 잡아 와서는 의기양양하게 '내가 했소이다~'하면서 저녁상을 기다리던 그 때 그 시절.
세월이 흘러 지금은 매립이 되어서 집터가 되었고 그 바닷가의 추억은 묻어버린 흙더미 속에 깊이깊이 파묻혀 버렸다. 그러나, 이 맘때가 되면 무거운 흙더미 긁어내며 그 시절의 기억을 들추어본다. 길가에 가로수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아도 그 때가 생각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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