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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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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엄마를 보면 화가 나!!


BY 모퉁이 2005-04-08

몇 년 만에 추석명절을 친정에 다녀왔다.

12일 태풍 '매미'를 친정에서 고스란히 맞았지만

차례상을 물린 뒤의 양초에 불을 밝히고 이이힉~하며

귀신놀이까지 해댔던 철없는 마흔다섯의 딸과 또 그의 딸들.

간밤의 수마는 말할수 없을만큼 참혹했다만 다행히..그래 다행히도

친정엔 세숫대야 하나 날아가지 않고 차분했다.

동네 골목에 밀려 날아온 쓰레기더미가 태풍의 위력을 대신 말해줄 뿐...

 

딸만 내리 일곱을 낳았던 엄마는 나 위로 둘을 가슴에 묻고

다섯을 출가시켰지만 아버지는 큰사위의 얼굴만 기억할 뿐

아래로 네 사위는 대면도 하지 못하셨다.

그런 엄마곁에 오래 머물지도 못 한 체 좋은 사람 만났다며 차례대로 우리는

엄마곁을 떠났고,지금은 엄마 혼자 외로히 집을 지키고 계신다.

 

어쩌다 한 번씩 받는 전화 목소리는 언제나 가라앉아 있어서

끊고 나면 마음이 허전하여 한동안 일손을 잡지 못할 때가 있다.

어디 불편한데 없냐고 형식적인 물음을 던지고

대답은 항상 괜찮다는 말을 하셨지만 고질적인 무릎병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매번 파스에 의지하며 끙~앓으시는 소리를 내 아무리 건망증이 있다한들

어찌 잊을까.

 

사위는 백년손님이란 말이 아직도 엄마에겐 유효하다.

딸보다 더 살갑게 대하는 사위임에도 엄마는 항상 어려운 모양이다.

해 놓은 밥이 가득한데도 새밥을 지으려고 쌀을 퍼내고

누워 쉰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꼿꼿하게 앉아 손주들과 맞장구 들고 싶어하고

어느세월의 이야긴지 재작년에 한 이야기를 작년에 했듯이

올해 또 같은 이야기를 엊그제 이야기인양 들려주려 하신다.

 

엄마는 그거 작년에 했던 소리 아녀?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자꾸 해대고,옆집 누구네 캐캐묵은 제삿이야기까지

들려주려 하는 엄마한테 나는 왜 자꾸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엄마,그만 좀 해요.언제적 이야기를 하는거여.그 사람 지금도 거기 살어?

그리고 그 집 손주는 지 엄마가 데리고 갔대.할머니는 지금 치매끼가 있어서

큰아들네로 들어간지가 언젠데 그 집 손주 걱정을 하고 있대?'

 

그러니까 수년전의 이야기를 지금의 일처럼 들려주고 싶어하신다.

받아치는 내 목소리가 매몰스럽게 들렸는지 남편이 눈치를 준다.

'장모님은 사람이 그리운거야.그리고 장모님이 알고 있는 조그만 것도

모르리라 생각되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고 알려주고 싶으신거야.

그건 당신이 이해를 해야지 장모님께 그렇게 잡아떼듯 말을 끊으면 돼?'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혼자서 얼마나 허전했으면,얼마나 말이 고팠으면 주절주절 저리 말이 많으실까.

이해를 한다면서 화가 나는 것은 무엇일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정리는 잘 되어 있으나 치워야 될 것이 많다.

이것 치우면 저게 걸리고,저것 치우고 나면 또 다른 것이 걸리고

냉장고며 싱크대를 다시 정리하는 나를 보고 뭐라 속엣말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신다.

저누무 지지배 또 잔소리한다,,싶으신 게다.

잔소리가 아니라 목에 걸린 것을 나도 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앞에서 뜨거운 것이 흐를 것만 같았다.

 

곱살맞은 성격이 못 되는 탓에 싹싹한 말주변이 없는 나는

내 뱉는 말이라곤 엄마귀에 거슬리는 말투가 되었을 것이다.

엄마여서,,엄마이기에,,엄마한테 내 맘을 전하는 방법이 투박한 짜증이었다.

왜..엄마는 왜..이렇게 혼자서 궁상스럽게,,왜,,,나를 화나게 하냐 말이야,,엄마...

 

돌아오기 위한 짐을 꾸리는데 어느새 엄마의 손에 검정봉지가 들려있다.

친정동네에 오래된 과자공장이 있는데 고향의 명물처럼 수십년을 이어온 과자였다.

남들은 곡식이며 여러가지를 챙겨준다지만 농사가 없는 친정에서는

특별히 챙겨줄 것이 없다.그래서 엄마는 항상 그 과자를 사다가 넣어주신다.

맛있는 과자가 흔해빠진 요즘 그런 과자 누가 거들떠 보기나 하리오만

그래도 추억속의 과자이기에 마다않고 나는 챙겨온다.

별 맛이 없어서 아이들은 입에도 대지 않지만 나는 가끔 혼자 옛날 맛을

찾아보려 꾹꾹 씹어보곤 한다.

 

8시간을 달려오는 동안 작은아이가 챙겨온 소설'등대지기'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이 목까지 꽉 차서 윙윙거리는 고속도로의 바람소리라도

듣지 않으면 안될성 싶었다.

창을 닫으라지만 못 들은척 차창을 열어놓고 ,그리곤 길게 심호흡을 했다.

 

다시 엄마를 볼 날은 3개월 뒤인 아버지 기일을 예약해 놓았다.

아마도 또 그날 엄마를 보면 나는 또 화가 날 지 모른다.

아니..또 화가 나서 엄마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댈것이다.

내가 이렇다.이렇게 못됐다.

엄마......

 

 

 

 

 

여성시대

 

2003-09-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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