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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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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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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BY 모퉁이 2005-04-08

신혼 살림을 차린지 2년 만에 이사를 해야했다.

주인이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세를 주고 갔는데

사설 댄스 선생이 이사를 오면서 세 들어 살던 우리는

 원치 않은 지루박과 차차차,부르스 음악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돐이 되지 않은 아이는 주현미의 매들리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었고

왁자지껄 웃음소리에 선잠에서 깨어 울어야 했었다.

맹모삼천지교의 뜻을  따른 것은 아니었지만 이사를 하는 이유에

한 몫 한 것은 분명하다.

 

꽃 피는 봄이 오려는 삼월 어느 날 우리는 두번째 이사를 하였다.

역시 셋집이었는데 주인댁에는 나보다 두살 어린 과년한 딸이 있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언니라고 부르라 해도 항상 나보고 아줌마라고 불렀었다.

그녀는 늘 집안일을 하였고 옷매무새가 야무지지 못했다.

말도 두 번 정도 되물어야 알아들을 수 있었고 바깥 출입도 별로 안 하는 듯 했다.

그런 그녀가 우리집을 제집 드나들 듯 스스럼 없이 드나 드는 것은

다름아닌 이제 돐을 막 지난 우리 딸 때문이었다.

무척 이뻐했었고,엄마대신 잘 돌봐주기도 하였는데 그런 그녀를 나도 싫어라 하지 못했다.

친구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찾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쩌다 내가 볼 일이 있어서 나가면 무척 아쉬워 하는 눈치였다.

언제 오냐고,,멀리 가냐고..대문간 까지 따라 오며 물어대는 것이다.

 

너구리 라면 두 개를 삶아서 나눠먹자고 온다.

옆에는 밥을 한 공기 꼭 가지고 온다.

둘은 후루룩 거리며 나눠먹고 커피는 내가 낸다.

아줌마 아줌마..시작부터 끝까지 아줌마를 불러대며 졸졸 따라다니던 그녀.

그러던 그녀에게 맞선이 들어왔다.

어쩔 줄 모르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선을 보고 온 몇일을 앓아 누웠다.

가슴이 뛰고 설레여서 밥맛도 없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녀...얼마 후에 결혼을 하였다.

물론 나도 가서 축하해주었다.

그녀의 집은 동네에서 괜찮은 알부자였고,그녀의 남편은 조그만 제화점을 한다고 했었다.

현금대신 가게를 하나 차려주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묻지 않았다.

 

그 집에서 둘째를 낳고 나는 다시 세번째 이사를 하였다.

그녀도 딸을 하나 낳았고 가끔 애기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놀러 오기도 하였다.

이렇게저렇게 세월이 지나 큰아이 일곱살이 되던 해

우리는 그 동네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객지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작년 겨울.

친정아버지 기일이어서 친정에 갔다가 그녀의 소식 듣게 되었다.

벌써 오래전에 혼자 되어 친정에 있다는 소식과

그녀의 어머니..나보고 항상 딸처럼 불러대던 그 어머니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 그사이 재혼하셔서 알콩달콩 살고 있단다.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옛집을 찾았다.

세월의 이끼에 담벼락엔 금이 가고 하얀 기저귀 휘날리던 옥상에는

검정색 빨랫줄만 덩그맣고 어째 옛날의 그 집이 아닌 것 같다.

커다란 밭터였던 자리에는 3층짜리 목욕탕이 근사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듣자하니 그 건물도 그녀네 아버지가 지으셨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집에서 그녀도 그녀의 새엄마도 아버지도 함께 산다는 것이다.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낯선 엄마가 쳐다본다.

목욕하러 온게 아니고 그녀를 만나러 왔다 하니 의아한 눈으로 보시면서

3층 살림집으로 가라신다.

 

화들짝 놀라는 그녀.

어쩔 줄 몰라하며 넓은 집안을 왔다갔다 바쁘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무엇을 줄꺼냐고 앉지도 않고 서두르는 모습이

십수년 전의 모습 그대로인데, 그렇잖아도 듬성하던 머리칼은 흰머리가 숭숭하고

아직도 아줌마라고 부르는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묻어 있었다.

눈가에 물기를 훔치느라 나를 제대로 보지를 않는다.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면서 무엇인가 찾겠다고 한다.

눈 오던 날 큰아이와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그녀의 딸을 생각했는지 중학교에 다닐거라고 한다.

헤어지고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음에

자꾸만 눈밭의 꼬마를 쓰다듬는다.

 

일어서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란다.

먼저 하는 일은 없을 줄 알면서 커다란 글씨로 적어주었다.

대문을 나서는데 목욕탕 카운터에 앉은 새엄마 그러신다.

딸 친구는 아닌 것 같고 보험설계사 인 줄 알았단다.

흠흠...아무려면 어떠리..

 

길 건너 배꽃다방까지 따라 온다.

그 아래 당구장도 이발소도 국밥집이 있는 3층건물도 그녀네 아버지 소유이다.

지금은 모두 장부책에 적어놓은 날짜대로 세를 거두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때도 당구장만 돌아가신 엄마가 관리했고 모두 세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 들어가라고 해도 오히려 나를 걱정한다.

오랫만에 왔는데 길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된단다.

후후..아무리 그래도 내가 친정집을 못 찾겠나.

 

한 블럭 건너서 뒤돌아 보니 아직도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를 보았는지 빈 손짓을 훠이훠이 내 젓는다.

그 때서야 왈칵 눈물이 솟는다.

에이구..참...미련한 인생, 잘 살아야 될텐데....

 

 

 

 

 

 

2003-07-07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