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남편의 고교 동창들은
조기축구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정기야유회를 갖는다.
가능하면 온 식구들이 함께 동참하여 우정도 정도 마음껏 나누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여름날의 축제이다.
이미 정해진 날이 하필이면 태풍의 영향권에 든 날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끈끈한 단결이 기꺼운 빗속의 축제에 들게 했다.
기우와는 달리 토요일 오후 2시를 기준으로
빗속을 뚫고 하나 둘 모여 든 입김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우중에도 날다시피 달리는 남자들을 보고 실감했다.
진하해수욕장 가기 전에 있는 '서생'이란 곳.
그곳에 고교 동창 한 분이 관리하는 인조잔디구장이 있어
줄창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남자들은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여자들은 봉고차 안에 오글오글 모여앉아
다과를 나누며 그런 남자들을 오랜만에 느긋하게 감상했는데
미처 보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꽤 솔찬했다.
벗어진 머리를 옆머리를 길러 숨겼던 사람이
모자를 쓰고 달리다 에라, 모르겠다 과감히 민둥머리를 드러내자
그 안사람은 사색이 되고 지켜보던 우리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갈수록 머리 위가 반짝이는 남자들이 꽤 된다는 걸
처음인 듯 알게되는 심정들이 겉으론 웃으면서도 다들 짜안했지 싶다.
며칠 전에 깁스를 푼 남편을 염려스럽게 지켜보는 안사람,
축구화를 새로 샀는데 하필이면 비가 온다고 짤짤거리는 안사람,
아점(아침겸 점심)을 먹고 와서 힘도 없을텐데 저리 열심히 달린다고 안달하는 안사람,
잠자리에서 너무 힘을 빼서 저사람이 저리 맥을 못추는강..
너무 솔직하게 우리를 뒤로 넘어가게 하는 안사람,
애들 방학과제물 때문에 큰소리가 오간 뒤
입 꼭 다물고 기분 뒤틀려 따라왔다는 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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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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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 때문에 차창 문을 열지못해
여자들의 수다가 한 몫 더한 열기는
금새 차안을 뿌연 수증기탕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수건으로 창을 닦아가며 열심히 밖을 내다보는 여자들은
입은 입대로 눈은 눈대로 남자들과 열심히 함께 달렸다.
한달에 두번은 정기적으로 축구를 해서인지
그 연륜에 비해선 다들 날렵하고 탄탄한 몸매들을 갖고 있는 편이다.
주 목적이 경기보다는 가족간의 화목이 우선이었던 터라
한 경기만 채우고 다들 진하해수욕장으로 차를 이동시켰다.
커다란 방을 두개 잡아놓았지만 비때문에 예약취소가 잇달아
주인의 선심으로 텅텅 빈 다른 방들도 다 우리차지가 되었다.
남자들은 비오는 마당에 커다란 비닐 차일을 세우고
평상을 정리한다 이동식 노래방기기를 설치한다 떠들썩하니 바쁘고
여자들은 저녁준비에 분주한 손놀림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아니랄까봐 어찌 노래실력들은 하나같이 가수 뺨치는지..
어느 집 하나 치우침없이 부부가 차례로 돌아가며 마주보고 노래부르는 모습들이
그저 지금처럼만 변함없기를 손모아 기도하게 했다.
밤은 낮보다 더 환한 이야기로 지새우고
다들 한 두시간쯤 잠깐 눈을 붙이는 사이
밤새 듣던 빗줄기는 점점 엷어지더니
아침이 되자 말끔한 햇살이 눈부신 얼굴로 찾아왔다.
서둘러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젊은 햇살의 고함처럼 싱싱한 진하해수욕장에서
파도타기며 조금씩 나온 부위가 틀린 서로의 반라들도 감상하고
알맞게 피부들을 그을린 후
점심땐 횟집에 가서 배두드려가며 먹고 마시며 또 다시 호호 하하~~
오후3시쯤 다들 즈그집 앞으로 갓~!
↑
요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우리들 살아가는 야그다.
근디 그 후의 내 소감은 이제부터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총 책임을 맡은 회장님과 총무님의 수고를 절감했다.
총무님댁과 개인적으로 가까운지라
나는 밤새도록 총무님댁 언니와 손이 부르트도록 일을 했다.
아니, 어느정도는 기꺼이 자청해서 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 속상한 것이
똑같이 놀러와서는 손에 물방울 하나 안 묻히고
난, 공주과이옵니당~~! 하고 있다가
협찬 상품들만 눈이 벌개서 챙겨가는 아줌니들이 6할이더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행사규모가 크다 보니
해년마다 협찬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그 행사의 요지에 공감해서 멀리서나마 성의만 표시해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지라
돌아가는 차안에는 다들 박스 하나씩은 그득하게 챙겨가는 쏠쏠함도 있긴 하다.
헌데, 죽어라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느긋하게 돌아앉아 동양화 패만 돌리다 문득 생각난 듯 얼른 거울만 들었다 놨다 하다가
얌체처럼 밥차려놓으면 살짝 먹고 얼른 칫솔들고 화장실 행하는 여자들.
늘 그런 사람이 설마 다음번에야..하고 보면 또 역시나 그렇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서서 바른 소리 하기엔
다들 심성들이 너무 여리고 착하기만 한지라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들 귀만 아프다.
그렇다고 남편들은 또 무슨 죄로 즐거웠던 여흥의 뒤끝을
눈살 찌푸리며 끝내고 싶겠는가.
그러니 죽어라 일하면서 겉으로 표현은 못했지만
속으론 그 사람들의 그릇을 참 많이 씹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억눌렀던 마음들을 가감없이 분출하는 남자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이 된 거 같아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었지 싶다.
지금 온몸이 아프다.
일할 때는 몰랐는데 하루가 지난 오늘에 온 몸에서 신호가 온다.
마당 한 쪽 따로 마련되어 있던
컨테이너식으로 지어집 조립식 부엌바닥이 배수가 잘 안되어
밤새도록 빗자루로 물을 쓸어내렸더니 지금 팔이 수시로 비명을 지른다.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가끔 팔을 콩콩 쥐어박으면서까지
자판을 두드려대는 나, 이것도 병인가..? (...ㅋㅋ)
그래도 나름대로 총무님댁 언니랑 도란도란 얘기꽃 피워가면서
서로를 챙기다 보니 원래도 사이가 좋았지만 친자매 이상으로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다음엔 우리 둘이 쏙 빠지고 다른 사람들 알아서 준비 하라고 하까"
둘이서 그 말하면서 막 웃었다.
"우리, 다신 이런 짓 하지말자 알았제..?"
언니의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우리 둘 다 내년에 또 기꺼이 수고를 감내하러 가지 싶다.
가장 노릇하느라 심신이 지친 내 남자를 위해서라고..자위하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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