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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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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 인연에 대하여


BY 최지인 2006-03-15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런 저런 끈으로 연결되는 인연의 고리.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도

점점 눈에 뛰어드는 인연이 있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속에 불길처럼 들어앉는 인연이 있다.

 

사람의 성격따라 그 등급을 매겨놓고

수치 계산하듯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한 번 내 옷깃을 만진 사람은

절대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습성이 있다.

설령 그 사람으로 인해

몇 번씩이나 마음을 베이는 한이 있더라도..

 

다만 혼자 속으로 앙앙대며

'사람'이라는 정감있고 따스한 품격에서

'인간'이란 기계적이면서 차갑기도 한 단순한 의미로

격하시키는 일은 종종 있지만.


 

너무나 냉철하고 사리분별 정확해서

곁에 다가서면 쌩쌩 냉기마저 느껴지던 사람이

어느 날 그 단단한 포장을 풀고 느슨한 모습을 보일 때나

또는 전혀 짐작도 못했던 속앓이를 눈물로 풀어내 보일 때

사람 사이 허물지 못할 벽은 없구나 싶으면서

새삼 가슴이 뭉클해 지곤 한다.

 

오늘 그런 인연과 장장 한 시간 반을 통화했다.

아마도 그런 긴 통화는 내 생애 처음이지 싶다.

아픈 팔을 교대로 바꿔가며 귀에서 땀이 났을 정도니..

 

그녀,

늘 신비를 한겹 두르고 있던 여인이었다.

항상 야무지게 갈무리된 아름다운 미소와

'단아함'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천상 여자인 듯 하면서도

막상 다가서기엔 왠지 푸릇한 거리감이 주어지던.

 

평생 잘 닦인 포장도로만 걸을 것 같던 그녀가

생활 자체의 흔들림으로 괴로워한다.

결혼에 대한 책임과 또 하나 가슴속으로 뛰어 든 '사랑'이

경제적인 무게와 맞물려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럼에도 그 사랑으로 인하여 힘든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 같다고

기탄없는 심정을 토로한다.

 

가슴 속 가득 쌓여있던 혼자만의 노래를

후련하게 풀어낸 사람만이 가지는 허탈함과

알 듯 말 듯한 어떤 위험한 경계를 즐기는 듯한 묘한 감정의 켜.

 

그 질식할 것만 같은 아찔함이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내게 할당이 되었을까.

나라면 무사히 자신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던 걸까.

 

조금은 고맙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한 마음이 번갈아 춤을 춘다.

 

무어라 말해 주어야 할까.

전화선을 타고 내 속으로 달려와

폭발하듯 터져버린 한 편의 드라마.

 

예견하지 못한 충격을

미처 흡수하지 못한 마음은

머리 속에 윙윙거리는 비음을 오래도록 잔영으로 남기고..

 

소화되지 못한 생각은

배설의 출구를 찾지 못해 내내

낯선 눈빛을 굴려가며 비상구를 외쳐 대고..

 

그냥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든 게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는 그런 상투적인 인사말과 잠식된 시간 속에서

이젠 어쩔 수 없이 나도 공범이 되었다는 위기 의식과 함께

묘한 긴장감에 두려움마저 든다.

 

긴 통화를 끝내고 저린 팔을 쓸어내리며

그녀에 대한 걱정보다는

'인간'보다는 '사람'이라는 친근한 이름을

내 가슴에 하나 더 저장했다는 아이러니에 실소를 한다.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진정 '사람'의 인연으로

따스한 햇살 한줌으로나 비쳐지는 존재일까.

늘 이성적인 '인간'이기 보다는

진득한 삶의 냄새 폴폴 풍기는 '사람'이기를 소망하지만

글쎄,, 모를 일이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남의 시선 안에서만 정확한 잣대가 주어지는 법이니까.

 

내 생각에 완급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만능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 그럼 지금의 나는...??

 

아침에 받았던 짧은 입김,

그녀와의 긴 통화에 견줄 수 없는

커다란 부피요, 무게인 것을..!

 

나는 앞으로도 그 짧은 시간의 호흡을 위해

온통 하루가 매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