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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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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눈길


BY 최지인 2006-02-02

 

 겨울날의 아침 출근길은 서로가 피워 올리는 허연 입김에서부터 시작한다. 쨍 금이 갈 것 같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정류장에서 마주친 눈길들이 한 마디씩 건네는 인사에 의례적이나마 사람 사는 인정이 뭉게뭉게 묻어난다. 하루의 목적지로 출발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섰던 몸짓들이 각각의 번호표를 찾아 들고 떠나면 또 다른 번호표를 부여받은 눈길들이 먼데서 동그랗게 달려오는 속도를 더듬는다.

 

 시간을 굴리는 버스에서 내다보는 세상은 만화경이다. 온갖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거짓 없이 드러난다. 하루의 새로운 출발과 전날 밤의 여독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머뭇거림이 아슬아슬하게 공존의 틀을 받치고 있다. 가끔씩 미처 발산과 연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젊음들이 비릿한 뒷골목 냄새를 풍기며 아침의 공기를 휘저어 놓을 때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질 않다는 걸 이미 인지한 뇌세포는 일부러 좋은 풍경이 들어옴직한 곳만 골라서 시선을 보낼 줄도 안다. 덕분에 오늘 아침엔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서면 오거리 신호등 앞. 언제나 정체 현상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추운 날씨 탓인지 신호등 앞에 일자로 줄지어 선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얼어 있다.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한 가지 표정으로 통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은 양 주머니 속에, 잔뜩 움츠린 어깨로 목 티를 입었거나 목도리를 두르고, 콧잔등이 약간 빨갛게 된 얼굴에 일자로 굳게 다문 입에서는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들로 하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호빵이 절로 떠오른다.

 

 그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한 아이에게 자꾸 시선이 머문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나 되었을까. 마치 분홍색 눈사람을 보는 듯,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분홍색으로 치장한 아이의 눈이 가시거리의 한계가 있음에도 유난히 초롱초롱하다. 아이의 분홍색 모자 위에 부서지는 아침햇살이 우리나라 미래의 빛을 미리 보는 양 보는 이의 가슴도 화안해지는 느낌이다. 딸아이들 대부분이 성장기 중 분홍색을 선호하는 기간이 있다는 걸 이미 딸을 키운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새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장갑까지 셋트로 분홍인 아이의 손에는 미술 시간 준비물인 듯 만들기 재료가 들려있다.

 

 신호등이 바뀌고 폴짝거리며 뛰어가던 아이가 그만 발이 엇갈려 길바닥에 폭삭 넘어진다. 손에 쥐고 있던 준비물이 저만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신발 한쪽이 벗겨져버린다. 체구에 비해 신발이 너무 컸었나 보다. ‘아이쿠, 저를 어째’ 속으로 애가 탄다. ‘아이가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리면 어쩌나. 신호가 끊어지면 어쩌나. 저만치 앞에 굴러간 준비물을 누가 좀 주워주어야 할 텐데...’ 버스에서 후딱 내릴 수 없는 마음만 안타깝다. 그런 심정은 나만이 아니어서 말없이 내다보는 다른 이들의 눈길이 한껏 염려를 담고 있다. ‘얘야, 어서 일어나거라’ 모두의 한결같은 응원이 모아져서일까.

 

 아무도 아이를 거들떠보지 않고 휭 하니 지나쳐가지만 아이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순간 깜박이는 신호등을 보더니 신발을 한 손에 주워 들고 맨발로 건널목을 뛰어서 건너간다. 사람의 본능은 그 짧은 순간에도 생과 직결된 경, 중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가 보다. 준비물보다는 신발을 챙겨드는 아이의 기지를 지켜보며 다들 안도의 한숨과 함께 흐뭇한 웃음을 문다. 일단 아이의 안전 확보가 이루어지고 나니 이젠 준비물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이상도 하지. 주변 어디를 봐도 깨끗하기만 하다. 언제 주우신 걸까. 머리 희끗한 어르신이 아이의 바로 뒤에 서 계시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스윽 내미신다. 마악 신발을 신고 허리를 펴던 아이의 바알간 볼이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와아, 내 준비물이 무사했네..”

신발 대신 포기했던 준비물이 온전하게 눈앞에 있으니 얼마나 반갑고 기뻤을까. “고맙습니다아~” 멀리까지 다 들릴 정도의 큰소리로 꾸벅 인사를 하고는 분홍처럼 폴짝폴짝 뛰어가는 아이의 곁을 멈췄던 차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며 지나친다.

 

 삶에 있어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큰 것과 작은 것, 알고도 놓쳐버리거나 모르고 지나쳐버린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한 눈 팔지 않고 자기 앞의 생만 바라보며 바삐 살았다고 해도 세상 한 곁을 지나오는 매순간순간 남모르는 도움으로 지탱해왔던 건 아닐까. 모른 척 지나가도 우리 주위엔 이렇듯 늘 언제나 표 안 나게 남을 배려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리라.

 

 누군가가 그 아이를 안쓰러워하며 얼른 일으켜 세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르신은 말없이 뒤에서 지켜보며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위기의 순간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지까지 함께 배려해 주신 것 같다. 그리하여 세상의 엄중한 이치까지 절로 깨달을 수 있는 배움의 길도 함께 선물해 주신 것은 아닐까. 아이에겐 자칫 각박함으로 자리할 수도 있었을 겨울 아침을, 한 발 뒤에서 준비물을 슬며시 챙겨주시는 것으로 더할 수 없는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 한 컷을 마련해 주신 그 분께 참 많이 감사하다. 그런 따스한 기억들로 인해 훗날 그 아이의 장년도 또 다른 선행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가 늘 따뜻한 풍경을 그려낼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버스의 속도로 인해 저만치 작은 점처럼 점점 멀어지는 분홍빛 실루엣 위로 내 유년이 아롱아롱 겹쳐진다.

 

 내 유년의 겨울은 참 많이도 추웠다. 가난을 멍에처럼 둘러쓰고 살아야 했던 그 때, 얇은 옷에 한 겨울 살을 에는 바람을 마주 안고 십 오리 학교 가는 길은 차라리 고행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려고 벌판을 질러서 뛰어가다 보면 드문드문 서 있는 짚단가리가 바람막이를 자처하며 얼른 쉬어가라고 손을 내밀었다. 얼얼해진 양 볼과 이미 감각이 없어진 귀를 싸안고 짚단가리에 파묻히듯 기대면 아침 햇살을 부지런히 빨아들인 볏짚이 따스하게 품어주었다.

 

 감각이 다시 살아나 가려워지는 귀를 비비며 마주한 햇살에 시린 눈을 꼭 감고 ‘하아~ 하아~’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 하얀 솜뭉치 같은 입김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가끔은 그 입김을 눈길로 좇으며 내가 눈꽃이 되어 날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뱉는 숨결마다 하늘을 향해 소지처럼 날리던 소원은 이제는 그만 가야할 때라고 내 어깨를 가만히 떠미는 짚단가리의 손길에 의해 머쓱하게 밀려나곤 했다.

 

 우연인 듯 꼭 내가 참고 견디어 낼 만큼씩의 거리로 서 있던 짚단가리로 인해 다음 번, 다음 번 하며 목표를 옮기다 보면 그 멀게만 보이던 학교가 짠하고 눈앞에 나타났다. 그 당시만 해도 땔감이나 소 먹잇감으로 논바닥에 남아 있을 짚단이 귀한 시절이었건만 유독 학교 가는 들판의 가리들만은 봄이 되도록 그 부피가 줄어들지 않고 너끈히 그 자리를 지켜내었다. 아마도 가난한 유년의 겨울에게 자연이 베풀어 주는 최고의 관심어린 애정과 배려가 아니었을까.

 

 아이의 아침에 내려앉는 따뜻한 눈길들을 대하며 비로소 휘둘러보는 세상은 온통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고층 빌딩도 햇살을 튕겨내며 웃는 것 같고, 골목길 쓰레기통이 비질을 하고, 옷을 벗은 거리의 나목들도 초연한 눈짓으로 말없이 교통정리를 하는 듯하다. 예전엔 왜 이런 느낌들을 몰랐을까. 지금껏 내 마음을 닫아놓았었기에 이런 아름다움들을 지나쳤을 뿐, 아침은 언제나 묵묵한 눈길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아, 갑자기 지금 내 유년의 가난한 자화상에게 따뜻한 옷을 입혀준 자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아침마다 깊이를 달리하며 나에게 조건 없이 너른 품을 허락했던 그 눈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