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얼마간
자신도 모르게 내재된 예지력이 있는가 보다.
간밤에 꿈속에서 내내 헤매었다.
어떤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길 위에서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먼 길이 앞에 있고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닫혀있고
밥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밥을 푸려니 아직 솥이 차갑고..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왜 이러냐..
그러다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니 아침이었다.
한 숨도 못 잔 듯 머리가 무겁고 뒷목이 뻐근했다.
'오늘 하루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매사 조심해야겠다'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에 도착해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틀간 비어 있던 사무실에 도선생이 왔다간 거였다.
아직도 그렇게 무식한 도둑이 있는건지
아님, '나는 초짜요'라고 광고하는 건지
문을 장도리로 아예 뭉개다시피 우그러뜨려 놓았다.
이런 못된..무잡한 시대의 잡초같으니..원,
가슴이 콩닥콩닥 덜컹덜컹
혼자서 어찌해야 할까.
우선 회장님이랑 국장님께 전화를 넣는데
손이 후들거려서 번호가 잘 안눌러진다.
아고, 침착해야지 침착해야지..
스스로를 다스려가며 아침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르겠다.
내 의자 밑 방석 밑에 있던 시재 봉투.
우와~~! 기적이다. 그대로 있다.
흐유~ 하마터면 십오만원 박을 뻔 했다.
꿈땜을 이렇게 하는구나 싶으면서
다른 건 어디 피해가 없는지 두려움을 눌러가며 살펴보니
취재 사진기를 넣어둔 국장님 소형금고랑
중요 서류를 보관해두는 곳은 아무 이상이 없다.
주 목적이 돈이다 보니 무거운 카메라나
기사 원고, 서류 따위야 안중에도 없었겠지만..
뒤늦게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와
새삼 꼼꼼이 카메라의 구석구석을 닦는 문기자의 표정이
십년만에 만난 애인 대하듯 애틋하다.
냉장고 위 반쯤 배를 채운 돼지는
도선생에게마저 외면당하는 수모를 당하고도 그저 싱긋이 웃고 있다.
돈의 가치는 이렇듯 기본 목적?에서조차
그 희비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마치 서자의 비애같은.
이리저리 식구들 서랍이랑
캐비닛 문이 다 열어젖혀져 있긴 한데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없는 듯하다.
도선생 힘들게 문 부셔놓았는데
건진 게 없어서 엄청 투덜거리며 나갔겠다 싶다..ㅋ
아랫층인 5층에도 역시나 도선생이 흔적을 남겼다.
거기도 별 피해 없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4층은 비었으니 헛다리 짚었을 거고
3층부터는 secom장치가 되어 있으니 손을 델 수 없었을 거고..
이래저래 가난한? 사무실 문들만 집중포화를 받았다.
집주인이 오후에 오신다고 했는데
저 문들 면상을 보면 참..울화가 나시겠다 싶다.
두 곳의 문을 새로 달자면 비용 꽤나 나가겠다.
손님.
살면서 참 많은 손님들을 겪는다.
때로는 내가 손님의 주체가 될 때도 있지만,
사무적인 일로, 집안 일로, 또는 개인적인 일로
이런저런 종류의 많은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반갑고도 고마운 손님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해가 되거나 화를 불러오는 손님은
마음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참 많은 노력과
그에 따른 희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과 색깔을 주는 손님일까.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저 멀리 안개 낀 창밖을 내다본다.
저 안개처럼 명확한 답을 내기는 어렵지만
이왕이면 밝은 미소처럼 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잔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