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성장하다 멈춘 마음이 있어서일까
뜬금없이 봉숭아 물이 간절했다
그래서 어제 저녁 참에 학교로 가서
화단 한쪽 무수한 봉숭아 꽃 대궁중에서
꽃잎 몇장 잎사귀 몇 장 대궁도 하나 슬쩍~~
그냥오기 미안해서 화단앞에다 이렇게 써놓았다
"추억을 찾고파요. 이해해 주실거죠? 아주 조금 땄어요".
감기로 코맹맹이 소리를 해갖고
아이들 덜 끝난 방학숙제를 채근하며
연방 터지는 재채기에 코를 훌쩍이면서도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던 혼자만의 설레임..
그 순간만큼은 난 17살 가시내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내 푸르렀던 시간을 딸애에게도 입혀주고 싶은데
으이구,지지배~~ 한마디로 딱잘라 "난, 이제 그런거 싫어..촌스럽게"
가슴이 따끔거리다 못해 서글퍼진다
변해가는 세월은 모든걸 변하게 한다
가장 무서운 인식의 변화가 바로 내 눈앞에서 확인되는 당혹감.
늘 제자리이다 못해 자꾸만 후퇴의 길을 밟는 내 의식이 잘못된걸까
애써 추스리는 마음이 괜시리 먹먹하다
하긴,,,,
나도 이젠 예전처럼 깻잎이나 콩잎으로 손을 싸
명주실로 감는 것이 아닌
손톱을 제외한 손가락 둘레엔 메니큐어를 바르고
깻잎과 명주실 대신 호일과 고무줄을 동여매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이용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내 하는 양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편도
요즘 누가 그런거 하느냐고 누가 봐줄 사람도 없는데
거 뭐 그리 쓸데없는 일을 하냐고 면전에 대고 퉁박이다..
참말로....
이쯤되니 기분 정말 씁쓸하다
그러나 한가지 위안은
아직 어린 아들녀석은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라는 점이다
"엄마, 이쁘겠다. 나도 해줘...나도 봉숭아 물 들일래.."
"뭐야? 남자 녀석이..손톱에다 누가 그런다냐. 고마 빨리 치아라"
또한번 남편의 퉁박이 날라온다
씰룩이며 울상인 아들녀석의 기분이 짐작이 가지만
맘속으로만 고맙지 큰소리 날까 내목소린 속으로 꿀꺽 삼킨다.
대신 난 감기 중인 아들녀석과 나의 감기를 핑계로
아들방에서 녀석을 꼭 끌어안고 자버렸다...
덕분에
어린 딸에게 봉숭아 꽃물을 정성들여 들여주던
그 옛날의 엄마 냄새속에서 밤새 어지러웠다..
......2003년 8월의 한가운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