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2월만 되면
나는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된 중학생 딸애를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내 삶의 방식에 참으로 큰 깨달음과
반성의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초콜릿 데이가 그 주인공이다.
딸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아빠의 성품을 닮았는지 유난히 남에게 주는 걸 좋아하는 딸애는
벌써 한 달 전부터 용돈을 모으기 시작하는 눈치였다.
목록에 빼곡이 명단까지 작성해 가면서 시키지도 않은 심부름에
서투른 설거지까지 자청해서 조금이라도 용돈을 더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폼이 어지간히 사 날라서는 성에 차지도 않겠다 싶었다.
드디어 초콜릿 데이 전날 저녁,
늦은 밤까지 지 방문을 꼭 닫고 혼자만의 비밀 작업에 골몰하더니
아침에 아이 방문을 열어보니 챙겨놓은 가방이 한 가득 씩 두 개였다.
아빠, 엄마 몫의 초콜릿을 안방 문을 빼꼼이 열고 들여놓더니
슬그머니 나가는 아이의 얼굴이 아침부터 한껏 달구어져 있었다.
한쪽 손에 따로 든 가방에
유달리 큰 부피의 인형과 초콜릿이 들어 있길래
"아, 이거 너네 담임 선생님거구나?" 했더니
동그랗게 눈을 뜨는 아이가 하는 말
"아니요. 아이, 엄만 차암...이건 우리학교 교장 선생님 거예요..
교장 선생님이 우리들 대장이니까 당연히 제일 큰 몫은 교장 선생님 거지요."
그 부끄러움이라니..!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된통 한 대 맞으면 그런 기분일까.
왜 난 교장선생님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당장 눈앞에서 아이를 평가하는 선생님에게만 시선이 가 머무는
마음이 먼저였던 나는 그 날 아이에게 어떤 교훈보다 값진 배움을 얻었다.
교장 선생님께 드릴 선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것이었지만
자신만의 정성을 들인 예쁜 포장과 작은 메모지가 붙은
담임 선생님의 초콜릿도 나름대로 참 예뻐 보였다.
친구들과 주고받을 작은 선물들도 아이의 홍조 띈 볼처럼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가방 가득 담고 있었다.
저만치 학교를 향해 머리를 나폴거리며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때묻지 않은 그 순수함이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기를 기도했다.
'지금처럼만, 지금처럼만....'
그렇게 자라주기를 기도했던 아이가 이젠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는 건지
조금씩 자신의 손익계산서를 고집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너무 욕심이 없어 좀 더 자신을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젠 아이 입에서 다른 모든 이들을 제치고 친구의 이름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까닭 없이 슬슬 서러워지는 건 또 왜인지 모르겠다.
비록 업체간의 상술로 만들어진 날이라 해도 그 날로 인해
나는 아이에게서 내가 놓쳐버린 소중한 삶의 이면을 배웠기에
작은 정성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주고받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 후끈한 마음을 줄 선물을 준비하며
이번에도 아이에게 받을 초콜릿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