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풀 머리 풀고 일제히 옆으로 쓰러진 길을
오늘도 버스는 잘도 달렸습니다
조금은 더 금빛으로 빛나도 될 날들을
바삐 서둘러 겨울로 가는 뒷모습은 허허롭습니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시골 시장 풍경 중에
유독 눈길을 잡아끌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어느 촌로의 앞에 놓인 소쿠리에 수북히 담긴 석류..
예전의 기억 속에 있는
빨갛고 이쁜 색의 살짝 터진 사이로
저절로 침이 고이게 하던 알알이 내비치는 석류알이 아닌
못나고 색깔이 들다 만 아주 볼품 없는 석류가 말입니다..
촌로의 깊은 주름살과
그 석류의 못다 핀 계절이 왜 그리 눈물겹게 겹쳐졌을까요
그럼에도 세월 앞에서 당당한 눈빛만은 살아있던 노인.
어쩌면 그 눈빛은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힘없는 촌로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건 아니었는지...
버스에서 내려
가능하다면 그 분의 석류를 다 사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이
이미 버스는 한참을 붕붕거려 거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왜 이리 마음이 짠한 걸까요
한동안 그 분의 눈빛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누구를 바라보는 것도 아닌,
허공을 향해 담담하면서도 쏘는 듯 형형하던...
바람은 강한데
석류 소쿠리는 다 비우고 들어가셨는지...
아, 오늘 저녁 바람은
입을 열지 못한 석류의 비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