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감나무 밑에 불이 붙은 듯 빨간 낙엽들이 어지러웠지요
어릴 적
새벽 눈뜨기 바쁘게
게슴츠레 눈 비비며 마음보다 몸이 먼저 달려가던 감나무 밑.
이쁜 낙엽 주워 모아 졸졸이 깔아놓고
주위에 떨어진 투명하리 만치 말간 주홍색 홍시들을 주워 모아
조심스레 하나하나 얹어 놓을 때의 그 설레임들.
먹는다는 즐거움에 앞서
계절이 고스란히 내 앞에 와 휘장을 두르고 서 있다는 느낌에
의식마저 환한 등불 밝힌 듯 호사스런 치장을 하던.
살풋 손에 얹힌 터질 듯한 감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에도 없던 '희망'이란 말이 저절로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던 그 때는
내 앞에 늘 죽 뻗은 포장도로만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이던 마음먹은 대로 될 것 같았는데---
지금 전
감잎 차 한 잔을 앞에 두고도
비 온 뒤 숲에서 나던 그 향내 같은 차 맛도 제대로 못 느끼는
그저 그런 속인이 되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기억만 씹고 있네요 .
아시는지요.
마당가에 선 감나무 그림자가 사뿐사뿐 한치씩 옮아갈 때
마루 위에 뽀얗게 깔리던 빛깔도
나무 가지 사이의 양광을 쫓아 그 깊이를 달리하며 자리를 옮겨 앉는 것을.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단풍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들을 하지요 .
그 많은 낙엽들이 주는 미적 느낌, 감각, 노래들...
그 중에서 누가 저에게 가을 단풍을 얘기하라면
전 단연코,
주저 없이 감나무의 그 불타는 정열을 들고 싶네요 .
기온 차의 굴곡이 심할수록 단풍은 곱다는 공식에 맞게
알맞은 기후풍토가 조성된 곳이기도 한 강원도 산골의 아름다운 단풍.
아침 햇살이 새벽 안개를 슬쩍 걷어갈 때
작은 마을 골짜기 사이로 드러나던 긴 감나무 행렬의
그 순정하고 고운 빛깔이란--!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선 어떤 구도자의 행렬 같은,
차라리 장엄함을 불러오는 묘하고도 신비한 이끌림이었거든요.
시간 속에 묻혀 많은 기억들이 사라져 갑니다.
하지만 짧은 순간 망막에 스쳐간 기억일지언정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기억들 또한 많은 것 같네요 .
군데군데 얼룩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런 기억들로 인해 잠시 행복할 수 있다면
새로이 만들 기억 또한 소중함이겠지요...?
이곳에서 님들과 나누는 글의 교감이
매 순간 그런 기억의 한 컷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잘 다린 구수한 감잎 차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