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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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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먹고 맴맴


BY 최지인 2005-04-02

 

아이의 가을 운동회.

5학년이지만 또래보다 한 살 어린 녀석은

작은 체구도 체구려니와 지 엄마를 닮아서 운동에는 젬병이라..

다섯 명이 달리는 조에서 4등을 해놓고도 

속상한 표정은 커녕 숫제 당당하기까지 하다.

 

혼자서만 속으로 열불이 난다

한살 더 먹여서 학교에 보내자는 내 의사를 무시하고

강권으로 밀어부친 남편에게 죄없는 화살을 퍼붓다 말고

누군가 뒤에서 인사 치레 한다고 살짝 건드린 손 짓에

필요이상으로 화들짝 놀라 서로가 민망스럽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보를 잘 써야 하는가 보다..ㅋㅋ

 

손 등에 스탬프 잉크 한 번 묻히지 못하고 귀가한 녀석.

달랑 노트 한 권이 들려있다.

전체 학생 다 주는 수고했다는 의미의 상이라나..

그 명분이 가장 적절하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왜 이리 내 심사가 꼬이는지..

 

운동회를 핑계로 학원을 빼먹게 된 아이는

숫제 날잡고 놀 궁리로 바쁘다

좀 더 놀리면 어디가 덧나는지

내 심사 풀자고 아이를 다그쳐 욕실로 집어넣었다

작아도 학년은 학년인지라

이젠 부끄러움을 알아가는 시기인가 보다

녀석은 오만가지 상을 연출하며 돌아서서 양손으로 가리고? 주저앉아 버린다

 

엄마 앞에서 뭘 그러냐고, 이 뱃속에서 나왔는데..어쩌고 저쩌고

짐짓 냉정하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섭섭함과 웃음이 교차로 춤을 춘다

입 삐죽 내밀고 뻣뻣이 서는 녀석의 고추에다

사정없이 물세례를 뿌리니 좀 살살하라고 엄살을 부린다

 

거품낸 타월로 슥슥 문지르다

슬쩍 아이의 고추를 만진다.

그리고 얼른 내뱉는다.

"고추 먹고 맴맴. 고추 먹고 맴맴. 음.. 마시쪄?"

돌 지난 무렵 목욕 시키고 나면 뽀얀 맨살에 파우더를 발라주는 엄마에게

선물로 제 손으로 똑 따 주면서 녀석이 하던 말이다.

 

기겁을 하는 녀석의 표정에 폭탄 웃음을 뱉어냈더니

울상을 지으며 하는 말

"엄마, 성 폭행 한 거야 지금 씨이.."

 

앞으로 얼마나 아니, 몇 번이나 녀석의 고추를 더 만질 수 있을까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기회를 열심히 누려야겠다

다소 괴팍한 엄마로 불평하더라도

훗날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따스하게 기억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