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道)
회색 빛 시멘트 바닥을 터벅터벅 걸어갈 때면 내 발자국 소리에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여자는 발을 사뿐사뿐 소리 없이 놔야 한다. 발걸음에도 복이 들어 있느니...그리 털털거리고 걸어서야 어디 복이 붙어나겠느냐..”.
뒤에서 나를 붙잡는 듯한 아버지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다.
아버지는 늘 그러셨다. 길도 주인이 있어 늘 다니는 사람의 발소리는 자연히 아는 법이라고. 어떤 신발로 갈아 신던지 간에 그 사람만이 가진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고. 그러니 그 길 위에선 함부로 발을 놀려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학창시절엔 그게 왜 그리 싫었을까. 아버지는 별 희한한 말을 다 지어낸다고 속으로 툴툴거렸다.
아버지의 발소리는 당신의 전언처럼 늘 꼿꼿했다. 개울 건너 밭에 거름을 내러 가실 때, 지게 작대기를 잡고 구부린 한쪽 다리에 끙 한번 힘을 주어 일단 일어나시기만 하면 흐트러짐 하나 없는 걸음걸이는 긴 외나무다리를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건너가셨다. 논둑을 깎을 때면 한쪽 발뒤꿈치를 엉덩이에 받친 앉은걸음 자세는 한 치도 틀림없이 앞을 향해 묵묵히 리듬을 탔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논을 둘러보러 가실 때도 낡은 자전거의 페달 소리는 일정한 속도로 길 위를 굴러갔다.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 위에 동그랗게 먼지를 말아 올리며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 보다 보면 길과 아버지가 하나의 정지된 풍경이 되어 가슴속에 먹물처럼 스며들었다. 그 때 바라보는 길은 아주 평화롭기도 했고 오래도록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 같은 것이기도 했고 아릿한 슬픔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던 아버지가 어쩌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광낸 구두를 뚜벅이며 외출이라도 하실라 치면 아침부터 마당에 내려앉은 햇살은 유달리 부지런을 떨었고 얌전하게 누워있던 길마저 일제히 기립을 하는 듯 긴장감마저 일었다. 마당을 나서는 아버지의 어깨 뒤로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도 길과 함께 걸음을 놓았다.
그렇던 길이 비만 오면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군데군데 질척질척한 땅으로 변해 길이라기 보단 진흙구덩이가 되는 길은 아버지의 진중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이미 하잘 것 없는 대상일 뿐이었다. 늘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 앞에서 드러내 놓고 투덜거릴 수 있는 기회도 그 때였다. 있는 대로 입을 삐죽이며 진흙길을 탓하는 나에게 꾸지람 한 번 없이 아버지는 묵묵히 앞장서서 가방을 들고 나섰다. 깨끗이 세탁한 나의 운동화를 한 손에 꼭 그러쥐고 여식에겐 기다란 검은 장화에 우산을 받쳐주고 정작 당신은 우중에 온 몸을 내놓고 버스 타는 곳까지 냅다 같이 달려 주셨던 아버지. 그날만큼은 아버지도 발걸음 철학을 스스로 깨뜨려가며 딸자식의 원성에 무게를 실어주셨다. 아버지의 그 정성 때문에 더 이상 말 못하고 폴짝폴짝 물 고인 진흙땅 길을 뛰어 넘으며 도시 아이들의 반듯한 아스팔트길에 대한 부러움을 삼키곤 했다.
그런 아버지도 길 위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실 때가 더러 있었다. 주로 한해의 수확인 벼 매상을 끝내고 농협에 다녀오신 날이 더욱 그랬다. 평생의 가업으로 손톱 한 번 깎아 보지 못하고 닳아서 없어진 고단한 농부의 삶은 늘 버겁기만 했다. 피와 땀으로 맺은 한해의 결실을 거두어들이고서도 농협 대출을 막고 나면 당신 손에 남는 건 고작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의 허망함이 전부였다. 어디 하소연 할 수도, 가눌 길도 없는 마음을 틉틉한 막걸리 몇 잔을 위로 삼아 밤길을 도와 왔던 아버지의 허탈한 갈지(之)자 걸음. 속으로만 억눌렀던 당신의 마음을 신작로가 떠나가라 노래로 풀어내시던 밤, 그 겨울밤을 흔들던 ‘흙에 살리라’란 18번 노래는 어쩌면 자꾸만 포기하고 싶은 농부의 길을 당신 스스로 다잡아야 했던 주문 같은 건 아니었을까. 철없어 아무것도 몰랐던 그 때는 그런 아버지를 참 많이 원망했었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잠들었던 동네 개들마저 컹컹대고 합세하면 나는 벌써 저만치 달아난 잠을 이불속으로 구겨 넣으며 일부러 자는체했다.
어른이 된 지금, 일상생활에 얽힌 여러 가지 일들로 머리를 식힐 겸 나선 저녁 산책길에서 그냥 생각나는 노래를 흥얼흥얼 뽑아내다 머리 끝 쭈뼛 서며 문득 깨닫는다. 아버지가 갈지자를 그리며 길 위에 노래로서 풀어냈을 온갖 삶의 풍상들을. 끝내 가슴속만 까맣게 태웠을 많은 울분과 세상에 풀지 못한 한과 속으로 삭여야만 했던 말 못한 설움들이 가락마다 실려 덮였을 신작로의 밤은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 혼자만의 몫이었다. 그렇게라도 한잔 술에 세상을 잊고자 했던 몸부림을 왜 그땐 그리도 이해하기 힘들었을까. 이해하려고만 했다면 난 좀 더 아버지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삶의 일터에서 안식처로 돌아오던 그 길이 때로는 포근한 위안이기도 했을 테고, 때로는 무거운 형벌처럼 피하고 싶은 자리이기도 했을 테고, 때로는 상실된 마음을 다잡던 길이기도 했을 텐데. 아무리 애를 써도 줄어들지 않던 가난한 추위를 술 몇 잔으로 녹이고 한 모금 담배 불에 의지해 힘겹게 도착한 집에서 자는 척 앵돌아 누운 여식에게 따가운 수염 살갑게 비비던 그 안타까운 부정의 길을 왜 몰랐었던가. 점점 커가는 여식에게 마음 뿐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술 힘을 빌어서야 비로소 내보이던 아버지. 그 마음을 읽기보단 확 끼치는 술내음에 역겨워하던 못난 딸은 지금 아버지가 계시던 자리에 와 있다.
그랬다. 나에게도 길은 있었다. 못난 여식으로 부모의 고통 쯤 다들 그러려니 나 몰라라 보낸 길이 있었고, 한때 눈부시게 빛났던 푸른 시간과 현실의 갈등과 상처로 못 견디게 아파했던 길이 있었으며, 사랑에 눈뜨면서 비로소 세상과 타협했던 용서와 화해의 길이 있었다. 그리고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을 행복이라 여기며 힘주어 꼭꼭 밟는 지금의 길도 있다. 내가 단지 애정을 보이지 않았을 뿐 늘 변함없이 내 발자국의 리듬을 고스란히 기억하며 유년의 그 황톳길에서 지금의 잘 포장된 환경으로 따라와 준 길. 그럼에도 난 나를 포함한 내 주위만 챙겼을 뿐 ‘길이란 그냥 인간에게 주어지는 조건의 하나’라는 지극히 구조적인 시각으로 치부하는 이기심으로 일관했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정녕 아버지가 내게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가르침을 비로소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익히며 길은 그렇게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구별해 내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을. 도시의 네온으로 휘황한 거리를 다시 걸으며 생각해 본다. 절대적인 어둠속에서도 조용히 자신을 감추고 드문드문 서 있던, 그 시골 골목 파름한 가로등에 의지해 낮은 소리로 울고 있던 내 젊은 시절의 고분고분한 길을.
어느 날 내게 시간이 주어져 다시 그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그 길을 되풀이해 걸으며 지난 날 미욱했던 내 맘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조금씩 되짚는 발걸음마다 풀어내고 싶다. 예전에 뚝 떨궈 놓고 와선 여적 잊어버리고 산 그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