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저녁.
음식 준비를 다 끝내고서야 시선이 가 닿는 친정에 전화를 넣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올해도 전화 한 통으로 맏딸의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오빠다.
언제 들어도 달콤한 목소리.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그리움이 차 오른다.
"오빤 있지, 언제 들어도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거 같어.
성우를 했어야 딱인디..그렇게 생각 안해..?"
똑같은 말을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해 들었을 터인데
언제나 털털한 웃음으로 받아넘긴다.
"오빤 언제 다시 집으로 올라갈 거예요..? 이번엔 며칠 유하면서
친구들도 만나고 초등학교 동문회도 참석하고 그럴 거지..?"
거리도 거리지만 맏며느리의 의무에 충실하다 보니
매번 명절이면 고향에 가지는 못하고 마음만 동동거리는 나는
늘 오빠를 통해서 고향 소식, 동문 소식, 친구들 소식도 묻고
이런 저런 자리에 참석 못한 아쉬움을 풀곤 했는데..
웬걸, 이번에는 추석 차례 지내자 마자 올라가야 한단다.
"말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이 무서워지더라.
내일 다들 모여서 이사장님한테 고개 수그리러 간다...좀 그렇다.."
그 심정, 충분히 알만 하다
젊은 날엔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고개 숙이는 짓 절대로 용납이 안되던 오빠.
설령 그것이 도의적인 예의를 차리는 자리라 해도 결코 편승을 거부하던 사람인데
아이 셋의 가장이고 보니 이젠 저절로 거짓 웃음도 지어지더라고.
길을 걸으면 언제나 도로 중앙을 걸어야 되었고
고개는 빳빳이 힘주어 위를 보고 걷던 그 자만심은
저도 모르게 휴지처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게 되더란다.
허허로운 웃음 뒤끝에 깨무는 그의 자존심이 입술 안에서 피로 고인다는 걸
전화선 너머 잠시의 침묵으로 아프게 전달되어 오고..
아,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나
유쾌한 유머 한 줄 건네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워 진다.
"에구, 어쩌겠어...있지, 다들 그렇게 살아.."
겨우 한 말이 그 꼬락서니인데
"너 꼭 다 늙은 중늙은이 같다..언제 그리 늙었냐..ㅋㅋ"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다.
그래,
중늙은이가 되면 어떻고 다소 바람 빠진 삐에로가 된들 어떠리.
잠시 주고받은 몇 마디에서지만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읽어냈다면
그것으로 핏줄의 아우성은 충분히 제 영역을 차고 들어앉았을 터인데..
그런데
전화를 끊어놓고 슬금슬금 아리는 이 정체는 뭘까
아뿔싸, 오빠가 걸어가는 그 위태위태한 길을
지금 내 남편도, 나도 걸어가고 있다는 걸 왜 애써 외면했던 건지..
어쩌면 현대를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걷고 있는 길일 수도 있는 길.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걸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