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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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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최지인 2005-04-01

<살아가는 이유..

이 한 편으로 갈음할 수 있지는 못하겠지만

내 마음의 중심이 교란에 처할 때나

어찌할 수 없도록 가슴 안에 휑한 바람이 들어찰 때

가을처럼 겸허한 눈빛이고저 하는 스스로의 다짐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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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이면

조금은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싶은 내 바램은 무산되고

동트기 바쁘게 남편의 다그침이 시작된다.

 

"뭐하노, 일나라마. 콧구멍에 바람 좀 디밀고 살자"

옆구리를 찔러대는 등쌀에 반사적으로 몸은 일으켜지는데

정신은 계속 조금만 더 눕고 싶다를 외친다.

허나, '건강'을 들먹이는 남편 앞에 내 심사는 꼬리를 내릴 밖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오르고 싶어하는 나에게

"등산복은 폼으로 사놨제. 모셔놓고 제사지낼래?"

남편의 한 방에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이미 완전무장하고 현관에 버티고 선 남편 옆에

신기 좋게 약간 끈이 풀어진 내 등산화가 준비되어 있다.

이쯤 되면 한 번 씨익 웃어 주는 게 예의일 터..

"고마워"가 붙으면 더 좋고.

 

두 시간 남짓 가벼운 몸풀이 정도의 등산길이지만

처음엔 숨고르기도 힘들 정도로 버거워 내 체력에 대한

반성이 머리를 쳤는데 이젠 거뜬히 발걸음이 옮겨진다.

 

산을 따라 이리 저리 나 있는 오솔길에

사는 곳이 조금씩 틀린 사람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아침의 정적 속에 섞여들고

아무 말 없이 앞서 걷던 남편의 하얀 입김이

뒤돌아 서서 뒤따르는 나를 향해 손을 내민다.

장갑을 낀 손끼리 만나 숨겨둔 정을 파고 들 때

저만치 걸어가던 세월이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붉은 강물을 만들고

'그래,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

다잡는 시선 사이 쳐다본 하늘에 새 한 마리 날아올라 빈 여백을 채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질정 없는 장마비 속을 헤매는 듯한 현실 속에서 늘 마른걸레를 들고 살아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습기를 제대로 한 번 뽀송하게 말리기 힘들었던 나날들.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속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후끈한 모닥불이 있어

높은 계단 앞에서의 잠시의 숨 고름 같은 멈춤 뒤

소지처럼 하늘로 날리는 희망을 묵묵히 걸어가리라.

 

작은 소공원에 마련된 운동기구로 가볍게 몸을 풀고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청설모가

겨울도 잊은 채 반들반들한 눈을 들고 솔방울을 까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