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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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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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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BY 헬레네 2013-01-09

놀자 ..... 웃자......라나야~~~

 

나..... 어릴적엔 때리면 맞으면 되고 아프면 찡그리면 되고 싫으면 울면 되고

그게 안되면 걍 ... 참으면서 이시간은 언젠간 다 ~~지나간다 .

고로 나는 참는다 .참으면 된다 . 모든것은 다 .....지나간다 .

라는 법칙에 나는 매달렸다 .

 

내가 22세때 거부할수없는 운명으로 나에게 몰아닥친 쓰나미는 결혼 이었다 .

미친듯이 항거하고 소리쳤지만 나를쥐고 흔드는 그분은 이미 자신의 법칙을

세워놓고 나에게 미친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 그분은 나의 엄마였다.

나를 돈 많은 부잣집에 시집 보내서 잘 .... 살고 있는걸 보고 싶은게  소원

이었단다. 가출도 소용없고 울분도 소용없이 나는 그 사람에게 소속되었다 .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미치고 환장 하겠지만 할말이 없다 .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바게쓰를 들고 물을 길러 나왔더니 뒤이어

미친듯이 뛰어 나와서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공동 수도에서 머리채를 휘어 잡고는

개처럼 집으로 끌고 들어가서 날까지 받아놓고 집안 망신 시키는년 너죽고 나죽자

면서  식칼까지 들고 설치는 엄마를 피해 슬리퍼를 신은채 도망 나와서 친구가

쥐어주는 서울행 기차표를 받아쥐고 도망을 쳤었지만 일주일만에 잡혀왔고 나를

찿으러 온 엄마역시 몰골은 환자였다 .한 육개월만 살고 오더라도 말하지 않겠다는

어이없는 소리까지 하면서 횡설수설 했었다 .

 

왜 ? 그렇게까지 미련하고 무지 했을까 ??

자포자기 상태로 잠자코 있는 나에게 안심한 엄마는 다음날부터 집안에 온갖

혼수품들을 사 들이기 시작했다 .  전기밥솥 보온밥통 스텐냄비 등등  ......

자개장롱 . 화장대 차단스까지 몇 백만원어치를 해 대는걸 보면서 그렇게 보내

달라던  학교는 안 보내더니 참 한심한 짓이다 .라며 속으로 비웃었다.

 

엄마에게 그랬다 " 아무려면 엄마 보다야 더하겠어 갈께 " 땀이 뚝뚝 떨어지던

무더운 8월의 어느날 여름 신부는 무슨 일인지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결혼식 내내

덜덜 떨면서 손에 들은 부케마져 안스럽게 떨고있었다 .

 

시골 방아간집 육남매 맏며느리의 일상은 험난했다 .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지어 식구들을 해먹이고 하루종일 방아간일과 온갖 허드렛

일로 저녁이면 지쳐서 쓰러질 지경인데 시집간지 두달만에 시모는  식구가 늘었으니

방아간에서 나오는 떡부스러기와 동네 가정집에서 나오는 음식 구정물을 걷어다가

돼지를  길러야 한다면서 시동생과 신랑을 시켜서 돼지 막사를 지었다 .

동네에 구정물까지 걷으러 다녀야했다 . 추울때는 손이시리긴 하지만 출렁대지는

않는데 더울때는 출렁거리는 구정물을 이고 걷는게 힘이들었다 .

 

잘 살거라는 우리 엄마의 예상은 빗나갔고 나는 죽을만큼 힘이들었다 .

육남매 맏며느리에 방아간집 며느리의 일에 여러가지 힘든일 그중에 시골 아줌마들의

끝간데 없는 궁금증은 사람을 지치게했다.방아간집 며느리가 걸음 걸이는 어떻고

웃는건 어떻고 ...... 불쌍하다 .안됐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

저녁이면 방범대원으로 출근하는  시동생의 순찰복을 다리다가 깜빡 졸았던가 옷을 태웠다 .

어쩔줄을 모르고 당황해서 울고있는데 엄마를 부추겨서 중매를 했던 큰형부가 때맞춰 들어

서다가 그모습을 보고는 왜 ? 우냐고 다그치길레 옷을 태워서 나도 모르게 울었다는 내말에

다음날 바로 엄마에게 쫓아가서 그놈의 집구석에서 사람을 얼마나 부려 먹었는지 처제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데다 그깐 옷하나 태웠다고 그렇게 울정도면 사람을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짐작이 간다고 일러 바쳤고 화를 참을줄 모르는 엄마가 두시간 기차거리를

달려 오더니 소리를  질러대며 시모에게 따졌고 사태는 걷잡을수 없이 커졌다.

1년2개월만에 이혼도장을 찍고 1막은 끝이났다 . .

23살 10월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람들의 눈이 싫으니 도시로 나가서 취직이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울며불며 스스로를 자학하고 있는 엄마를 뿌리치지 못했다 .

 

24살이 되던 여름 어느날 나를 불러낸 엄마는 어느 허름한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는데

거기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있었고 눈초리가 싸늘한 젊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

선을 보는 것 이란다 .불편한 자리를 겨우 앉아있는데 엄마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막걸리를

마셔대고 있었다  나 먼저 가면 안되냐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면서  버스비  170원을 내게

건내주었다 . 딱 버스비니 잃어버리면 30리길을 걸어서 가야한다는 생각외에 다른 생각은

못했다 . 그때부터 그사람은 우리집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고 엄마가 퇴근하다 눈에 띄면

다정하게 손을 잡아끌어 집으로 데려와서 같이 밥먹자며 상을 차리라했다 .

 

나는 싫다했다 . 한번 했으면 됐지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냐고 따지자 첫째는

동네 사람들 보기 창피하고 사람꼴을 하고 살아야 한단다.그렇게 팽팽히 대립하던 어느날

늦은저녁 그사람이 놀러 왔다고 하며 들어서고 잠시후 엄마가 옆집인 상화네 집에 

잠시 갔다 온다며 나가더니 엄마는 들어오지 않았고 그사람은 눈을 휘번득이며 야수처럼

내게로 돌진하더니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 반항을 하는 나를 향해 이미 엄마하고 얘기

했으니 소리쳐봐야 소용없다며 웃고 있었다 . 몇 시간후 들어온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다음날 부터 방을 얻으러 다녔다 . 내게 하는말이 지난번에는 내가 너를 너무 멀리 보내서

그놈의 집구석에서 너를 어떻게 하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이번에는 가까이서 지켜주려고

그런다면서 결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

 

사방 7자의 방에 라면박스를 갖다가 옷을 담아놓고 이불한채 달랑 개어 윗목에 올려 놓고는

엄마가 방을닦고 시멘트가 발라진 부뚜막을 닦아내더니 나에게 새마을 회관에 가자고한다.

회관은 마트처럼 온갖 물건들을 진열해놓고 광산 근로자들을 상대로 팔고있었다 .

광업소에서 일을 하면 출근일수 만큼 하루에 800원짜리 식권을 발행해 주었는데

그 식권을 엄마에게 주면서 생필품을 사라고 했다는거다 .엄마가  조미료등 이것저것을

고르더니 뭐가 더 필요 하겠냐기에 됐다고 했더니 식권이 남았단다 .

그럼 라면이나 바꿔서 가져다 먹던지 나는 관심없다고 하자 그럴까 ? 하시더니 라면

한박스를 들고 엄마는 가고 나는 언덕에 있는 그 방으로 들어가 방바닥만 내려다 보길

네시간째 사방이 캄캄해져서 일어나 불을 키려고 하는데 전구가 불이 안켜진다 .

 

그대로 앉아 생각해 보니 엄마하고 방을 얻어놓고 저녁에 퇴근 할거니 먼저

가 있으라 했다더니 첫날부터 몇시간째 나를 앉혀놓은 이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왠지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술이 얼근히 취한 상태로

들어 오더니 불을 키라고 고함을 치길레 불이 안켜진다는 내말에 어딘가에서 전구를

구해와서 불을 키고선 첫마디가 " 너 내가 그렇게 싫어 ?" ...... " 내 말이 우스워 "

그래도 말이없자 " 이게 사람을 무시해 " ...... " 식권갖고 뭐뭐샀어 갖고와봐 "

부시시 일어나 주섬주섬 보여주었더니 " 이게다야 얼마나 빼돌렸어 " 기가막혔다 .

 

아이가 태어나고 자기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자는 성화에 가본 집에서는 도망간 전처가

속옷하나조차 챙겨가지 않은 것을 보니 얼마나 손찌검을 했는지 짐작이갔다 .

가까이서 지켜 주겠다던 엄마는 내가 맞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쫓아와서

너도 맞아보라면서 치고 박으며 몸싸움을 했고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않은채 방관자가

 되어갔다 .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제안을했다 . 너 아무래도 저놈하고 살다가는

맞아죽겠다  내가 돈을 좀 해줄테니 춘천에 가서 동생들 다니는 학교 앞에가서 스낵집

같은걸 해봐라. 당시 강대 3년 2년 이던 동생들을 니가 밥을 해먹이고 데리고 있으면

졸업할때 까지의 하숙비를 내가 선불로 준셈 칠테니 그렇게 처리 하자고 하셨다 .

 

350만원을 받아서 300은 가게를 인수받고 50은 방을 얻었다 .

공부를 열심히하던 막내는 갑작스런 아이의 수선에 많이 방해가 됐을것이다 .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계속되는 노동이었다 . 식당이  무허가 였었는데 장사 경험이

없어서 몰랐다 . 이웃집 누군가가 신고해서 단속반들이 들이닥쳤고 무허가로 걸려서

경찰 조서까지 받아야했다 . 1년반만에 가게를팔고 양품점을 차렸다 .

 

양품점은 계절이 바뀔때마다 자꾸 뒷돈이 들어갔다 .

엄마에게 물건값이 필요한데 융통좀 해주실수 있겠냐 부탁을 했더니 그러마 하고

150을 부쳐왔다 . 이건 내가 꼭 갚아 드릴께요 . 어느날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않은

그인간이 한번 오더니 수시로 찾아와 가게 쇼파에 앉아서 이죽거리면서 방해를했다 .

더 이상 물러 설곳이 없었다 아이를 보냈다 .가게도 팔고 이사를했다 .

아이가 문을밀고 들어서는듯한 착각에 미칠듯이 허해서 슬도 먹어보고 화투도 해보고

목 놓아 울어도보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뭔가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엔 뭘 해야하나 고민이 커졌다 . 친구가 오더니 터미널 근처에 맥주집이 있는데

장사가 잘 된다는데 너 해볼래 ? 덜컥 계약을 하고 시작했지만 어려웠다 .

 

그 와중에 둘째 언니가 많이 아팠다 .

아무것도 못 먹고 물도 못 삼켜서 원주 기독 의료원에서 온갖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못 찾아서 정신과 격리병동으로 들어 갔다고 했다 . 돌 사람은 난데.....그러던 어느날

둘째 언니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춘천을 왔다 . 혹시 해서 성심병원에서 검사를

해볼까 해서 왔다는데 지난번 보다는 좋아진것 같기도 했다 . 원인을 못 찾는병이라 ....

언니는 고기를 못 먹는다 해물류는 잘 먹는 편이어서 우리가게 바로 옆의 횟집으로 데리고

가서 저녁을 먹었다 . 뭔가 잘 해주고 싶어서 .... 언니는 곧잘 먹었고 다음날 태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후 ....... 크리스마스 이브날 새벽에 자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

아침부터 누굴까 ? 받으니 엄마였다 . " 엄마가 아침부터 왠일이유 크리스마스 이브날

이라고 전화 하신겨? "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욕들이 쏟아져 나왔다 .

칼로 베지를 쑤셔 죽일년 같으니라고 나는 밤잠 못자가며 벌어서 줬더니 니년은 호의호식

하면서 산다메 내가 거리만 가까우면 니년은 내손에 자박세이가 안남아 났을거다 .

끊으면 또 오고 그것도 내리 삼일째 피를 말린다 .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 가량 있다가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화천까지 출퇴근을 하던 남동생과 졸업후에 호텔 전산망

작업을 하고있던 여 동생을 불러 앉혀놓고 이러한데 이게 도대체 뭐냐 이유를 알아야

겠는데 니들 엄마한테 뭐 이야기 한거있냐 없단다 눈물이 쏟아졌다 . 언니였다.

태백에 살면서 외식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고 살아온 언니가 하루 저녁 밥값으로

삼만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는걸 보고 엄마가 준 돈으로 걔는 호의호식 하더라는

말에 화를 참지 못하는 엄마가 전화기 너머의 욕으로 분노를 표출 한거였다 .

 

그리고 얼마후 나를 찾아온 언니가 엄마가 처음에 준돈은 니가 동생들 밥값으로

챙겼다고 하드라도 나중에 빌려간 150은  왜 엄마에게 안갚냐면서 엄마가 돈이

있어서 준게 아니야 나한테 빌려 간건데 나는 엄마한테 2부 이자로 쳐서 3만원씩 매달

받았는데 넌 한번도 이자를 안줬다메 하며 따지길레 응 안줬어 그렇지만 애들이 대학 졸업

하고도 그냥 같이 있고해서 그 생각은 미쳐 못했네 알았어 내가 엄마한테 이자줄께 그리고

그때부터 매달 3만원씩을 엄마계좌로 넣어 주다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150을

엄마에게 갚았다 . 나도 마음이 많이 상했기에 엄마에게 3번째는 내가 알아서 할께요 .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 결혼식에 온 형부에게 현금봉투를 주면서 식장비 계산하세요.

했더니 엄마가 그정도는 내가 해도 되는데 하길레 아니 나 돈 있다고 필요없다고...

 

엄마가 늘 하는말이 둘째가 제일 고생도 많이했고 불쌍하니 이담에 퇴직금을 타면 둘째는

꼭 줄라 한다고 이야기 해서 그려려니 했었다 .석탄 합리화의 일환으로 형부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언니네도 이사를 가게 되었다 . 예전에 사두었던 15평짜리 빌라가

있는  부천으로 간다고했다 .당시 신혼 이었던 막내가 언니네 빌라에 전세를 살았는데

전세금 1500을 빼주고 이사를 갈려면 돈이 한 오백이 부족 하다고했다 .

그런가보다 .... 언니가 이사를 가고 남동생이 결혼을 하게 됐는데 나는 돈이 없어서

30만원을 부조금으로 가져 갔는데 언니는 70만원을 내어 놓으면서 내가 갖다 쓴것도

있어서 백만원은 해야지 했는데 절값도 넣어야 하고 그래서 이것만 갖고 왔다고 하자

엄마가 쓸데없는소리 하자 .... 남동생이 얼른 나서서 " 아 이 아줌마가 집안 싸움

할일있나 " 하더니  얼른 말꼬리를 돌렸다 . 그저 그런가보다 .

 

어느날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

돈을 오백을 넣어둘라 하는데 보험회사는 이율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

당시 삼성생명에 다니고 있던터라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이율만 따진다면 은행이

최고라고 그깐 보장 얼마나 되냐고 말미에 웃으면서 와 비자금 때문에 나라가 씨끄러

운데 울언니도 비자금 많이있네 언니도 웃고 나도 웃었다 .

 

며칠후 언니가 전화가 왔다 . 나에게 할 애기가 있단다 .

엄마에게 천만원을 받았는데 오백은 비용으로 쓰고 오백이 남아서 물어 본건데

지난번에 남동생 결혼식 때에도 엄마가 얼른 막고 남동생이 집안싸움 시킬일있나

하길레 뜨끔 했단다 . 엄마하고 남동생하고 셋이 있는자리에서 받은건데 엄마가

우리셋만 알자고 하면서 특히 셋째 한테는 알리지 말라고 했단다 . 근데 자기가

도저히 숨길수가 없어서 내게 이야기 하는거라고 한다 . 내가 웃으면서 언니가 그걸

나한테 이야기 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엄마 돈인데 엄마 맘대로 쓰는거고 엄마가

항상 언니는 준다고 했었잖아 근데 왜 나를 그렇게 경계를 시킨거야 나참 .....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 한점 서운한도 없었다 내가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

 

92년도에 막내동생이 이사를 가면서  도와 달라길레 언니네도 이사를 했고

겸사겸사 가본다고 올라가서 막내집을 다 정리해주고 이웃인 언니네로 갔다 .

당시 검정색 가구가 유행 이었는데 장롱과 문갑 화장대까지 셋트로 들여 놓았는데

좋아 보였다. 마침 3개월후에 우리도 임대 아파트로 입주할 계획이 있었는데  동생들

하고  살때부터 쓰던 5자짜리 장롱을 아파트 안방에 갖다 놓으면 반쪽밖에 안될것

같아서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었길레 언니 장롱 이쁘다 얼마줬어 물었는데 아니뭐

셋트로 사서 그러길레 아니 그러니까 난 저렇게는 필요없고 장롱만 ... 그러고선

혼잣말로 안방에 그걸 갖다놓으면 방이 반은 남을것 같아서 라는 혼잣말 끝에 

엄마가 " 야 야 ! 그럼 니 이사 갈때 그거는 내가 해주꾸마 " 하며 끼어 들었다 .

내가 엄마를 쳐다 보면서 엄마가 왜 했더니 니 조서방 하고 결혼 할때도 니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안해줬잖아 하자 둘째 언니가 얼른

엄마앞에 쫓아와서 앉더니 나는 반대야 엄마가 왜 ?해줘 야는 엄마가 해줄만큼 해줬어

첨에 갈때도 그만큼 해줬고 두번째도 엄마하고 나하고 15만원씩 내서 탄타나

가구점에서 장롱 사 줬잖아 그랬으면 됐지 뭘 또 해줘 하더니 니이 더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마래이. 기가막혔다 . 간다고 일어서면서 눈물이 쏟아 지길레 " 언니참 너무한다 "

그러자 엄마가 나서더니 니가 왜 나서서 아를 울리고 그래 그말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내가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까지 말하는언니가 야속했다 .춘천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아프게 남아 있는말 ...... 그래도 핏줄이니까 만나고

만나면 반가웠다 .

 

94년에 딸을 낳았고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엄마 생신에 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남편의

뇌 수술후에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닭갈비 집은 공치는 날이 더 많았다.

어느날 도청으로 출장오는 남동생을 따라 놀러온 엄마가 하루종일 손님이 한명도 없는것을

보고는 울면서 돌아 갔는데 가게를 차리는 돈은 어떻게 했냐길레 미숙이에게 오백을

빌렸다고 했더니 왜 ? 엄마에게 얘기하지 친구한테 아쉬운 소리를 했냐고 뭐라길레

그냥 그게 편해서 그렇게 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건만 돌아간 다음날 굳이 내 계좌로

돈을 넣었다 700만원 그러면서 하는말이 언니도 줬다고 그리고 나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란다 . 나는 그런 방법이 싫었다 . 도리없이 받았다 .당시 닭갈비도 한대 1500원

소주도 한병에 1500원이라 늘 오백원 짜리가 필요했다 그걸본 엄마가 하루는 금은방

에서  주는조그만 주머니에 오백원 짜리를 한가득 가져와서 내게 주었다 .

 

엄마에게 효도를 하겠다고 나에겐 의논조차 하지 않고 결혼과 함께 태백으로 발령

신청을 해서 그곳에서  함께 살던 남동생 내외.... 어느날 출장길에 들렸다는 올케가

뭔가 할말이 있는듯 나를 찾아왔다 .이혼을 생각해 봤다는 말을 하는데 짐작이 갔다 . 

엄마하고 함께는 누구나 힘들다. 이해한다 . 너희가 이쪽으로 다시 발령 신청을 해서 오고

엄마와는  좀 떨어져 있어라 .아직은  엄마가 너무젊다 .다행히 금세 발령이 떨어졌고 남동생

내외는 춘천으로 왔는데 엄마가 당신이 돌봐주던 손주가 보고싶다며 날마다 울더니 불과

며칠만에 보따리를 싸서 쫒아왔다 .내가 운영하는 한식집 바로 앞의 2층에 전세집이 있다면서

엄마는 희색이 만면해서 좋아라 계약했고 엄마와 나의 마주보기 동거가  시작되었다 .

밥은 전적으로 내가 해주고 엄마는 아이만 보고 올케는 직장을 다니면서  적당히 밀고 당기는

사이를 유지 해가던 어느날 서울을 다니러 갔던  엄마가 언니와 싸우고 내려 왔다는데 거기서

무슨 이유 였는지 모르지만 성남에 살던 큰언니까지 세모녀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한다 .

발단의 원인이 무언지 나는 모른다 . 단지 극도로 흥분한 엄마가 맞은편 이층집에서

맨발로 뛰어내려 오고 뒤이어 남동생도 따라 왔는데 들어서자 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쌍* 개같은* 니가 뭔데 누가 안방에서 더먹나 부엌에서 더먹나 감시했어 이년

이 개 같은*아 니가뭔데 <<<<< 너무 놀랐다 . 욕좀 그만하고 차근히 이야기 해보라고

했더니 언니가 그러는데 엄마한테 돈을 얼마나 받았나 떠 보느라고 장롱은 얼마줬냐

화장대는 얼마줬다 시시콜콜히 묻더니 언니가 입장이 곤란해서 피해서 씽크대 앞으로

피해 나갔는데 거기까지 따라와서 꼬치꼬치 캐묻고 지랄옘병을 했다메 이 나쁜년아 <<<<<

거품을문다. 개 같은 경우란 이런건가 몆년전에 주고받은 대화가 왜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되며 무슨 이야기 끝에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어처구니가 없다못해 환장할 노릇이었다 .

 

그게 언제적 얘기였고 나는 그런 생각조차 못했는데 자기가 직접 전화해서 내게 얘기

했고  좋게 이야기 했었고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안해본  오래전에 잊혀진 이야기가

지금에야  왜? 무슨 이유로 사람을 못살게 구냐고 대들다가 억울해서 언니에게 전화를했다

도저히 대화가 안되는 상대인 엄마에게 온갖 욕설을 듣고 있는데 남동생은 말리고 내딸은

울고있고 엄마는 가게 입구의 반찬 진열대를 손으로 내리치면서 악을쓰고 있는 이상황을

설명해 보라 했더니 내가 그랬었다고 느꼈단다 .죽겠다 . 무려 6년이 지난후에 기억도 나지

않지만 피하는걸 따라가면서 물어 봤다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 6년전 그렇게 아픈 이야기로

상처를 주었어도 엄마나 언니에게 따져 보지도 못하고 형제들 에게도 말한마디 못하고

주홍글씨로 새겨 놓은 내 상처를 다시 까발려서 급기야 소금까지 뿌려대고 있었다 .

그날의 일을 미안했다는 사과는 커녕 혼자만의 상상으로 각색해서 자그만치 6년후에

파헤쳐진 내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고 있었다 .

누가 더 받고 누가 덜받고 그렇게 피투성이 싸움까지 해야할까 ?? 엄마의 1인쇼가 끝나고

몇달후 만난 언니는 아무일이 없었던 듯 행동했고 나는 속없이 웃었다 .

 

 

세월은 흘러 2002년 사거리 대로변 모퉁이에서 고기집을 하고 있었는데 더운 여름날

채소를 보따리에 가득 이고 땀을 흘리면서 엄마가 오셨다 .

후평동에 17평 아파트를 2001년에 3300만원에 구입해서 남편을 내보내려 했는데

죽어도 가지 않겠다는 남편을 상대로  법원에서 차후의 행동에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공증서류를 받아쥐고 남편을 사면 해주고 나니 부동산측에서 보증금 오백에 월세 30을

받아 주겠다고 제의가 들어 왔는데 그 중간에 다시 태백으로 살러 갔던 엄마가

날마다 울면서 전화를 하니 어쩌면 좋겠냐고 하면서 언니가 나에게 그집을 엄마를

살게하면 안되겠냐고 했다 . 알았다고 하고 씽크대서 부터 도배 장판까지 새집처럼

리모델링을 해서 엄마를 이사를 시키면서 그럼 전세로 계산해서 큰언니 빼고 넷이서

4등분을 해서 돈을 주라고 했다 . 나도 장사 밑천이라도 있어야 뭘 해볼꺼라고

양해를 구했는데 남동생과 여동생은 혼쾌히 그러마고 하는데 언니가 펄펄 뛰었다 .

니가 재개발되면 남길려고 사놓고는 지 엄마가 살집을 시세대로 전세금을

달라는게 말이 되냐고 그건 아니라고 수리비만 얼마가 들었으며 며칠을 다니면서

들어간 소소한 비용도 다 내가 감수한거고 언니가 나에게 엄마가 매일 울고 있으니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나에게 어떻게 해보라고 해 놓고 그렇게하면 경우가 아니라고

하지만 정히 내기 싫다면 알았다고 잘 생각해 보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생각해 보더니 안되겠는지 이틀후에 전화가 왔다 돈을 입금 시켰다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해서 거기서 살게된 엄마가 후평동 시장에서부터 석사동까지 걸어서 야채를

이고 왔단다 .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왔길레 화를 벌컥 내면서 그냥오지 누가 이런거

갖고 오라고 했냐고 그랬더니 한단에 오백원이 싸다는데 하길레 날마다 대어줄게

아니면  이까짖 한번으로 무슨 큰 도움이 된다고 그러냐고 퉁박을 주었더니 잠잠히

앉아 있더니 화가났다 . 이년이 쳐먹고 살라고 지생각해서 갖다 줬더니 지랄 옘병을

하고 자빠졌네 야 이년아 너 돈이 그렇게 많아 뭐 이까짖게 무슨 도움이 되냐고 니

그렇게 돈이 많거든 내가 준돈 다 내놔 소리를 지를수록 흥분하는 엄마의 특징상

우렁찬 목소리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여름이라 앞 뒤문을 다 열어 놓았는데 가게

안도 아니고 가게앞의 대로변에서 소릴 질러대고 있으니 지나는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 혼자 악을 쓰다가 가는가 싶더니 다시 열려져 있던 뒷문으로 들어 오더니 너

이년 내가 오백원짜리도 안쓰고 모아 뒀다가 너 다 갔다줬어 이년아 그거까지 2부

이자로 계산해서 다 내놔 <<<<<<<<< 죽고 싶었다 .

후에 동네 사람들은 내가 빚이 많아서 빛쟁이가 들이 닥쳤었냐 물어왔다 .

아무리 엄마라도 이 거지같은 자존심을 위해선 확 갖다가 던져주고 싶은데 그순간은

돈이없고 얼마만 지나면 내가 언제 그랬드냐?  아무일 없었던 듯  행동했다 .

 

또 다시 몆년후 ......남동생 내외에게 서운한 일이 있으면 마구 풀어놓는 엄마에게

나는 한번도 동조해 보지 않았다 .단 한번도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내가 미웠었나.

우리집에서 말싸움이 됐는데 거품을 물고 소리를 지르더니 내 돈 다 내어 놓으란다 .

밤잠 못자고 벌은 피같은 돈이란다 . 엄마의 환갑잔치에 우리 지인들이 대략 한

오십쯤의 부조가 들어 왔는데 그걸 주겠다길레 필요 없다고 했더니 어느날 이백을

들고 와서 내 아들 성희를 위해서 주는 거라면서 그애가 꼭 필요 하다할때 주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비치면서 건내는데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

그랬는데 이번엔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서 복도에서  소리를 질러대니 복도가 쩌렁

쩌렁 울린다 . 내돈 <<<<< 언제 얼마 언제 얼마 들먹이며 내어 놓으란다 .

지겹다 . 또 지나갔다 아무일이 없었단다 .

 

그리고 작년 2월 어느날 백만원을 들고 와서 내딸 대학갈때 줄라고 따로 뒀었단다 .

받기 싫었다 . 너무나 간곡히 꼭 받아 줬으면 한다는데 받기 싫었지만 이유를

대라는둥 해 가며 들이 댈테고 어쩌면 또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 마지못해 받았다 .

아이를 데리고 가서 통장을 만들어 주면서 내년에 쓰라고 했었는데 얼마전에 딸아이가

둘째 언니네 집에 놀러가서 할머니가 대학갈때 쓰라고 백만원을 줬는데 엄마가

통장에 넣어놔서 내돈은 내돈인데 내맘대로 못써 라고 이야기 했다 한다 .

언니가 엄마에게 물어봤고 엄마는 나에게 전화해서 그집 딸둘 한테는 안줬거든

머스마 대학 갈때는 백만원 줬는데 ....... 기분이 영 안 좋았다 .

오래전 잊었던 상처가 또다시 어제 일 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고 가슴이 뻐근하다.

또야 ?도대체 뭘 확인하고 싶은건데 .....엄마가 누구는 뭘해줬고 누구는 얼마를

줬었고 나에게 이야기 해도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런가보다 그게 끝인데 왜 ? 언니는

매사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거야? 오래전에 얽킨 감정들과 함께 서운함이 확 밀려왔다 .

어느 잠안오는 밤 담근술 세잔을 먹고 답답한 마음에 옥상을 올라갔다 .

그동안 누구에게도 따져 보지도 못했고 진정한 사과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삭이고 또 삭이던 상처가 어제일 처럼 다시 아파왔다 .

영하 20도의 날씨는 맨발을 파고 드는데 눈이 소복히 쌓인 저 아래로 내려서면 푹신

할것 같다는 생각에 처연함이 들다가 아직 학업이 남아있는 딸아이 생각에 목이 아프다 .

며칠째 잠을 설치다가 옷을 사달라는 딸아이를 데리고 시내를 가는데 남동생이 전화

해서 엄마에게 가잖다 . 딸아이 옷사주러 시내에 왔으니 너희부부만 가라고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못가서 미안하다고 교복을 벗었으니 옷이 필요 하겠지요.

하는 내말에 그래 알았다 . 며칠후에 우리아이 옷을 사주겠다면서 당신 통장에 돈을

30만원만 찾아오란다 . 아이에게 할머니가 너한테 대학 간다고 옷을 사준다는데

작년에 받은게 있으니 받은셈 치고 엄마가 거절했다 . 괞찮지 했더니 응 한다 .

 

다음날 가게로 찾아온 엄마에게 받기 싫다고 주지 말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왜 그러냐고 묻길레 지난번에 받았고 자꾸 돈을 주겠다거나 하지 말고 그냥 당신

이나 쓰시라고 우린 돈이 필요 없다고 못내 서운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더니

간다며 휭 하니 가버렸다 . 다음날 전화로 화는 풀리셨어요 했더니 대답이없다 .

크리스마스 다음날 따스한 옷한벌과 귤한박스 그리고 먹을걸 챙겨서 올라갔다.

고기를 구워서 먹고 막걸리를 두어잔 마시더니 나에게 할말이 있단다 .

너 왜 내돈을 안받냐고 이유를 대란다 . 돈이 필요 없어서라는 내말에 급기야

흥분을 하더니 소리가 커진다 , 그래도 묵묵히 있으니까"  아하 한 백만원쯤 줘야

되는데 30만원 준다니까 겨우 30만원 으로 생색 내는거 같다 이거지" 라며 비아냥

조로 이야기를 하면서 온갖 이야기가 등장한다 . 순간  그동안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욱하고 치미는데 제어가 안됐다 . 나는 감정도 없고 생각도 할줄 모르는

개 . 돼지란 말인가 ? 나도 생각이란게 있고 치미는 감정도 있는 사람인데 개 .

돼지처럼 던져주면 받아먹고 화나면 돈내어 놓으라 행패하고 욕하면 들어주고

때리면 맞아주는 엄마의 노리개야 왜 주는사람 마음만 있고 받는사람의 마음은

없어야해 이게 무슨 개같은 법칙이야 화가났다 .

 

그래 얘기할께 첫째는 엄마가 화나면 아무때고 내돈 내어 놓으라는게 너무싫고

둘째는 돈 하면 둘째 언니하고 엮이는게 이젠 정말 지겨워 됐어 내가 이 가슴이

피멍이 들었다구 하며 내가슴을 마구 내리치자 부들부들 떨면서 니년이 나를 뭔가

화를나게 했겠지 이쁘게  가만히 있는데도 내가 돈 내어 놓으라 했겠어 이년이

먹을거 안먹고  아껴서 줬더니 라며 온갖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 방법이 틀렸다구

왜 처음에 언니한테 주면서 정란이 모르게 하라그랬어 그러니까 언니가 나를 경계하고

그냥 가격이나 물어본걸 꼬치꼬치 물어 보면서 뭘 알아내려 했다는 억울한 소리나 하지

떴떴이 내돈 내가 준다 그렇게 오픈하고 줬으면 애초에 그런 경계도 안했을

테고 지금도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서로에게 서운할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감정을

곧추세워서 내돈 <<<<<<<<< 이젠 지겨워 내말은 엄마의 악다구니에 묻혀가고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던 엄마는 내가 사간것들을 내차에 던져넣고 있었다 .

다음날 뒷좌석엔 우유 . 막걸리 먹다남은고기 . 귤 막걸리와 우유가 터져내리면서

새로사간 옷이 허옇게 젖어서 나뒹굴고 있었다 .

 

며칠후 언니에게서 전화가왔다 .형부가 돌아가시고 큰아버지의 손을잡고 식장에

들어가는걸 보면 울것 같아서 안간다고 언니의 큰딸 결혼식에 끝내 불참하는

이상한 생각의 소유자인 우리엄마 였는데 며칠후에 있을  둘째딸의 결혼식에

올건지를 물어볼라 했단다  엄마가 며칠째 기운없이 전화를 받는다고 무슨일

있냐고 " 나랑  싸웠어 " " 왜" 머뭇 거리다가 내가 돈을 안받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되었네. 내말에 무슨 소리냐길레 나도 언젠간 언니에게 한번은 이야기 할라

그랬는데 시기도 그렇고 전화상이라 좀 그렇긴 해 그래도 할께 왜 언니는 엄마와

내가 주고받는 돈에 그렇게 민감해 ? 무슨 소리냔다 . 나는 그냥 물어 본건데 어쩌면

그러냔다 .물어본게 어때서 라며 내게 소리를 지른다 .언니가 돈으로 한두번이냐고

언니네 집에 갔다 와서도 나한테 난리치고 그랬더니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지금

하냐고 화를낸다 . 나쁜년이 그럼 그렇게 생각하면서 너 나를 어떻게 여태 아무렇지

않게 만났냐고  그런년인줄 몰랐다고 펄펄뛴다 . 언니 잘 생각해봐 언니네 이사

갔을때  그방에 막내랑 엄마랑 다있었어 내가 아파트 입주하면 장롱을 어쩔까 한다고

하니 엄마가 사주겠다고 하자 언니가 처음에 . 두번째에 왜 3번까지 해준다고 하냐고

그말이 얼마나 나를 아프게 했는지 알아 했더니 처음엔 그런적 없단다.

전화가 끊어지고 문자로 동생 미안해 나지금 갑자가  거기서 문자는 끊어졌다 .

잠시후에 전화가 와서는 소리소리 지르면서 그때 다 사과하고

풀었는데 이 나쁜년이 그따위로 할거면 잔치에 부조도 하지말고 오지도 말라면서

나 이제 니 안볼거다 라며 전화는 끊어졌다 .몇시간후 또 전화가 온다 받았더니 너

진짜 나쁜년이네 니가  엄마한테 미친년 돌은년 하면서 욕을 했다메 에이 나쁜년 한다 .

이무슨 억지란 말인가 ? 엄마가 거짓말을 하는건지 언니가 억지를 부리는건지 모르

지만 자기들이 불리하면 있지도 않은말을 생산해서 이젠 나를 패륜을 만든다 . 

잘 들어 나 욕한적도 없고 조서방이 옆에 있었어 . 그리고 늘 당신이 내 머리채

휘어잡고 때려놓고 딸년이 머리를 잡았다고 그래서 내가 때렸다고 한게 한두번이야

언젠간 올케가 나서서 아니라고 형님이 언제 그랬냐고 나선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 할려거든 끊어 .

 

그리고 엊그제 아침부터 전화가 오더니 엄마가 우리집 앞이란다 .

당신 통장을 달라길레 건냈더니 이백 이십을 찾아 오란다 . 건내주자 이백은 언니네

결혼식에 가서 당신 이름으로 부조를 하라더니 이십은 쓸데가 있단다 .

그러더니 다시 통장을 건내며 50을 더 찾아 오라길레 뭐 하게요 했더니 우리딸

이름을 거론 하길레 " 제발요 " 그리고 이거 가져 가세요 , 통장을 건냈더니

받아들고 휭 돌아서 갔다 . 왜 이제와서 따지냐고 나 지금 암 덩어리가 저 속 깊은

곳에서 자라고 있는것 같아 아무도 내게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사과를 안했거든

자기들이 불리하면 기억이 안난대 그리곤 다 얘기하고 풀었대 언제 ? 누구하고 ??

먼 거리에 살다보니 어쩌다 집안 행사때나 만나지고 또 행사에 찬물을 끼얹을순

없고 지금의 남편도 모르는 3번을 다 까발려야 하고 그래서 나 한번도 들먹여 보지

못했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서 화가 독이 되어서 내가 너무아파 죽기전에

나 이 화를 다 풀고가고 싶어 이런내가 미친거야 요즘은  밤에 잠도 안와

어쩌다 술이라도 먹어야 겨우자 우리엄마 당신 표현대로 누구누구 다 얼마씩

줬다면서 다른 그 누구에게도 그렇게 내돈 내놓으라 욕하고 포악떨지 않았어

오직 나에게만 왜 ? 일까 나란인간 함부로 막 대해도 되는 3번이니까 그걸

누가 만들었는데 나 그래도 언젠간 아늑한 집을짓고 엄마를 내가 데리고 살아야지

저 맞추기 힘든 사람을 울 남동생을 주었다간 동생이 이혼하든가 못살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어 근데 왜 ??3300에 산 아파트 태백으로 가겠다고 팔라고 성화해서

팔았더니 지금 그게 7500이야 그래도 엄마땜에 나 식당해 먹느라 고생만하고

아파트 못 튀겼다 원망한번 해본적 없어 그보다 더큰 내인생을 송두리째

휘저었어도 지금까지 엄마 때문이라고 원망 안했어 나도 알아 엄마 스스로도

제어가 안된다는거  스스로도 힘들고 주변사람도 힘들게 하는게

우리 엄마라는거 예전부터 알고 있지만 이젠 종점이 얼마 안 남았았는데

내 가슴에 응어리 다 녹여내고 들어내고 싶어 이 화가 나를 병들게해 아프게해

나 이번에도 이번에도 소리없이 넘어가야 하는거야  정말 그게 맞는거야 ?

 

 

가게를 팔아서 돈을 만들면 내가 받은게 얼마가 됐던 따지지 말고 이걸로

계산 끝내자고 꼭 갖다주고 싶어 그래야 내가 살거같애 그러자면 한번더

파란이 오고 가겠지 어쩌면 같이 죽자고 할지도 몰라 근데 꼭 하고싶어

나 어떻게 해야해 또한번 목젖을 누르면서 침한번 삼키고 조용히 넘어가야해

내가 이렇게 병들어 가는데 이 답답한 가슴을 확 들어내고싶어 ....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