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901

쓰다만소설 ( 끝나지 않은 이야기 )


BY 헬레네 2010-11-29

가게를 들어 서자마자  초 한자루와 막걸리 한병 구워온 두부 한접시를 들고

비상구로 통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  으슥한 곳 이라 평소엔 잘 가지않던

그곳에 돗자리를 펴고 촛불을 켜놓고 술을 따랐다 .

 

" ** 아버지 .......... 듣고 있어요 ? ........ 내가 몇해전에 죽지않고 살아 난 건

아직 다하지 못한일이 남아서 일꺼라 생각 했어요 . 아마 내가 낳은 두 아이들을

마져 책임 지라고 살려 냈겠지요 . 정말 혼령 이란게 있다면 나한테 그것만 부탁해요.

내가 ...... 내 숨 떨어지는 그날까지 그아이 열심히 둥글리리다 . 나한테 그토록이나

모질게 했으니 한이 남았다면 내가 남아야 하는데 나는 다 ......잊었어요 .

그러니 당신도 다잊고 부디 좋은 곳 으로 가세요 ." 마음속의 말들을 웅얼웅얼

쏟아 붓고 마지막 술잔까지  따루어 놓고나서 절을 하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

 

작년 이맘때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아들 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 아버지 돌아 가셨어요 ........... 언제 .......... 오늘이요 ........ 알고나 계세요 "

더는 묻지도 않고 통화는 끊어졌다 .몇달이 흐른뒤 아이를 만났다 .

어떻게 살고 뭘 하면서 사는지 간략하게 이야기 하곤 딱 30분 만 에 아이는 가겠다고

일어섰다 . 아이가 코뼈가 부러지고 치료비를 부쳐 준걸로 트집이 잡혀서 말다툼 끝에

내가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것이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로 깊이 남아 있음이리라 .

 

하고있는 가게를 정리하고 내년에 집을 신축해서 그곳에서 식당이나 할까라는

구상을 하고있던 중 올 여름에 가게의 천정에서 누수 사고가 나면서 건물주와

전주인 이였던 1층의 호프집 사장까지 세사람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가게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 지금까지 9번의 가게를 개업을 하고 힘든 결정의

순간이 닥쳐도  한번도  점쟁이에게 물어 본다거나 하지않고 스스로의 결정으로

해 왔었는데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면  10번째 이제 더는 내힘에 부칠것 같아서

이것으로 내생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초조 해지고 

어디에 취업 할수도 없는 남편 에게도  일거리를 주자면 그사람이 제일 잘 할수있는

것이 뭘까 ?? 고민끝에 남편은 채소를 가꾸고 나는 신선한 야채를 이용해 맛있는

밥상을 만들고 그걸로 딸아이 공부도 원하는만큼 마져 가르쳐주고

아들 녀석도 장가가서 살수있는 기틀을  마련할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경제적 으로

확고한 안정을 다지도록 구상을  잘해야 할텐데 ....애가 쓰이는 요즘 이었다 .

 

아는 동생이 " 언니 내가 어딜가서 물어 보았는데 참 용해요 언니도 가서

한번 물어보면 어떨까요 ? " 하길레 반신반의 하면서 그곳을 찾아갔다 .

내이름과 생월 생시를 물어 보고 남편을 대는데 받아 적다말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깊이쉬며 나를 쳐다 보더니 다시 받아적은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 이사람 하고

어떻게 살았어요 ? " 한다 . ............ 잠자코 앉아 있으니 다시 나를보며

" 이사람 하고 끝까지 해로 할꺼유 ?" 다시 묻는다 .  "나이 오십넘어 살만큼 살았는데

얼마나 남았다구요 살아 야지요 " 했더니 " 아이구 미련둥아 내가 이렇게 미련한

사람은 보다 첨봤네" 하더니 " 끝까지  살거면 뭐가 궁금해서 왔수 " 하길레

" 하고있는 가게를 정리하고 집을 짓고 가서  식당을 할까 하는데 그렇게 하는게

괜찮을런지요? 그리고 요즘 갑자기 가게가 영 시원치 않네요. 여름에 공사를

하느라 40일가량 문을 닫았더니 그것도 작용을 했을것 같구요 "

했더니 " 가게에 들어가는 입구가 답답하다 그러네 할아버지가 " 그러더니 입구가

답답해서 손님들이 들어 오다가 발길을 돌린다며 부적을 써서 입구를 터주면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소리에 그럼 그렇지 뻔한 얘기네 속으로 생각 하면서도 

실은 가게입구가 대로변에서 곧장 들어서지  못하고 기역자로 꺽여서 들어 오는게

나도 답답하다고  생각 했었는데 바로 짚어낸다 싶어서  "사실 나도 늘 그게 신경이

쓰였어요 그래도 쭉 괜찮았는데 요즘 그러네요 " 했더니 내가 삼재 인데다 뭔가 막힌게

있다며 아이들을 대란다 . 강씨와 조씨인 아이들의 구성만 봐도  반은 짐작으로

짚어 낼것같아  찜찜 했지만 속일수는 없었다 . 딸아이의 성격을 본듯이 얘기 하더니

야무진 아이니 걱정할게 없는데 문제는 아들이네요 라며 아들쪽으로 누가 일찍

돌아가신 분 이 있냐고  하길레 없다고 하면서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

 

나를 쳐다보던  보살이 한숨을 쉬더니 내년 3월달이나 3년후에 3월달에 남편이

횡사 할수도 있겠다면서 자기손으로 가슴을 가르키며 게다가 이사람은 여기가

아니고 하며 손을다시 머리로 가져가며 여기가 안 좋다 하네요 . 하더니 나를 빤히

건너다 본다 . 온몸에 찌르르 전율이 솟는다 . 아주 오래전에 하던가게를 주인이

먹겠다고 나가라 할때 물어 보러 갔었다. 신기하게도 머리쪽을 얘기 하길레 남편이

뇌수술 한 것을 실토했었다 .그리고 나에겐 남자복이 없으니 그렇게 알라고 하며

내겐 남자가 도움이 안된다 했었는데 이분도 그렇게 얘길한다 .

혼자서 한숨을 포옥 쉬더니 " 어쩔거유 ? " 하길레 부적이나 써 달라고 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

 

다음날 부적을 가지고 온 보살이 가게를 들어서서 방마다 불을 다 키라 하더니

우측의 방마다 들어가서 뭔가를 빌고 나오더니  비상구 문을 열고 계단 앞에가서

구석진 곳 을 손짓하며 저 곳 에 귀신이 있네요. 라며 매달 초하루나 보름이 되면

막걸리나 부어 놓으세요. 하길레 알았다고 했더니 우측을 돌아 좌측 복도 쪽 으로

와서는 아예 방을 들여다 보지도 않곤 휙하니 카운터 쪽으로 나오면서 " 이쪽은

 재미없데  할아버지가 이쪽은 아예 들어가지도 말라시네 " 한다 . 주로 우측쪽만

손님을 받고 좌측은 놀리는 편 인지라 속 으로 깜짝 놀랐다 . 그렇게 한바퀴를

돌고나선 나에게 할말이 있다며 앉아 보라더니 사실대로 이야길 하라며 아들 녀석을

불쌍하다며 측은해서 어쩔줄 모르는 영 이있는데 누구냔다 . 작년 이맘때 그 아이

아버지가 돌아 가셨노라 했더니 어젠 왜 아니라고 했냐며 내게 이 사람이 갈데가

없으니 천도제를 지내 주라며 자기도 참 힘든사람 이지만 나처럼 힘든 팔자는 자기도

처음 이라며 이 미련한 사람아 하며 한숨을 쉬더니 나를 측은하게 쳐다본다 .

내가 왜 ? 그래야 하는데요 내가 그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격었는데

이제와서 그런 뻔뻔스런 요구를 한단 말이요 죽은 귀신도 염치는 있어야지 하면서

눈물이 확 쏟아진다 . 잠자코 있던 보살이 미안 하다네요 그래도 일평생 여자로

사랑한 사람은 본인 하나 뿐이 라네요 . 본인도 그건 알거 라는데요 사람이 할짓을

안하고 평생 개지랄만 떨었다고 미안하다 하네요 .

"개패듯이 때려주고 나선  도망을 가면 남들 보는데 망신 줬다고 붙잡아다 때리고

술을 먹고 들어와선 말대꾸를 해주면 말대꾸 한다 그러고 대답을 안하면 무시한다

그러고 그렇게 사람을 못살게 굴어놓고 나한테 백배 사죄를해도 부족 할 판에 무슨 ,,,,,,,,,,,

 하며 누구에게도 못했던 가슴속의 말들이 뭉텅뭉텅 쏟아져 나왔다 .

 

한참을 울고난 내게 " 염치가 없다고 미안 하다네요 그런데 스스로 자기업을

못 풀거든요 오죽 갈데가 없으면 본인 한테 왔겠어요 " ...................

이사람 누가 제사도 지내줄 사람이 없네요 . 미안 하다고 그 말만 전하라네요 .

그렇게 돌아가고 다음날 보살에게 문자가 왔다 힘들면 가끔씩 들러서

모든것을 풀고 가라면서 가슴속에 한을 너무 쌓아두면 행여 병이될까 걱정되니

아무때나 부담없이 다녀 가라면서 가슴을 조금만 내려놓고 살라는 ..........

 

20여일을 힘들게 보내고 있다가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기일이 언제냐고

물었더니 음력으로 10월20일 이란다 . 양력 11월 25일 저녁에 아들 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를 모셔놓은  법당에 왔는데 불도 다 꺼지고 캄캄 하다면서

사촌 작은엄마의 전화번호를 묻기에 가르쳐주고 얼마후에 작은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10월 22일 인데 아이가 잘못 알았다고 그리고 그때 법당에

맡긴것은 사망 당시의 절차만 모셨고 기제사는 안 모셨다고 한다 . 

잠시후 아들이 전화를 했길레 그렇게 설명을 했더니 의사의 사망 진단서 에는

12월 6일이 사망일로 적혀 있었다고한다 .

 

죽기전날 자신의 엄마와 싸웠고 허구 헌날 술에취해 사람 행세를 못하는

아들에게 독하고 모진 말 잘하는 그 엄마가 뒤져라고 악다구니를 썼고 그 엄마가

돌아가고 난뒤 혼자서 빈방에서 음독을 한것을 작은엄마는 발견일로 알고 있고

아이는 사망진단서에 나와있는 날 로 알고있는 것 이었다 .

 

작은엄마가 알려준 날.......내 방식대로 천도제 를 지냈다 .

이승에서의 모든것은 내가 다 책임 질테니 부디 좋은 곳 으로 가서 극락왕생을

하시라고 나도 다 잊을테니 당신도 다 잊으라고 ....... 빌고 또 빌었다 .

살면서 ...... 내가 알지 못하는 전생의 업 이 아직 남아 있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 보살의 말이 어디까지가 맞는 말인지 더는 궁금해 하지 않기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