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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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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난하다는 건


BY 김정인 2005-02-03

 

가난은 쫓아도 쫓아도 자꾸 따라붙는 강아지마냥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더니 지금은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는 바람에 아예 내 집에 대자로 누워 같이 살고 있다.

 

 어릴 때 내 마음에 그려진 가난은 한 지붕 16명이 꾹꾹 눌러 눈 인분과 구더기로 넘치는 나무토막 두개 걸쳐놓은 화장실이었고,

연탄 한 장 때문에 악다구니하며 싸우는 이웃이었고,

죽어라 밤낮 안 가리고 공장을 다녀도 공납금 낼 때면 이집 저집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초등학생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가난이란 놈은 구질구질했고, 초라했으며 비굴하기까지 했다.

그 때부터 나는 가난이라는 놈을 따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카드 색칠해서 파는 것, 전지분유 팔기, 슈퍼 점원 등 온갖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을 타기 위해 마음 졸이며 공부하는 것까지. 그 놈은 끈질기게 등 뒤에서 나를 비웃었고, 나는 능력 없음과 게으름을 탓하며 절망했다. 

 

 철이 들어 갈 쯤에는 작전을 바꾸어 그 놈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정신을 무장하기로 했다. 그 놈의 약을 살살 올려 염장을 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까짓것 돈 없어도 난 잘 살 수 있다는 거 보여줄게' 큰소리쳤다. 당장 결혼하려고 모아놓은 적금통장을 털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 돈 없어도 내가 얼마나 고상해 질 수 있는지 똑똑히 보라고' 외치며 악착같이 지식을 쌓아갔다.

가끔씩 넓은 아파트에 차 2대 굴리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편이 있는 부자 친구를 만나면, 괜스레 어려운 단어 써가며 나의 지식을 뽐내고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아래로 끄집어 내렸다.

그럴듯하고도 고상한 명분으로 빈틈없이 담을 쌓아 사람도 가난이란 놈도 내 주위엔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 젊은 새댁을 만나고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댁의 아이는 우리 아이보다 5개월 늦게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둘 다 딸이다. 그 집 아이 물건은 모두 최고로 좋은 새 것이고, 우리 집 아이는 하도 여러 곳이라 어느 집에서 얻어온 것인지도 헷갈리는 물건으로 죄 헌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가끔씩 내가 헌옷가지 수집함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정말 아이의 물건 중 새로 산 것이라곤 매일 먹는 우유와 엉덩이 짓무를까봐 밤에만 하는 팬티형 기저귀뿐이다. 첫째 아이 때는 그래도 새 것이 조금은 있었건만. 내가 가난한 건 얼마든지 참겠는데, 이런 부모 만난 죄로 구질구질해 질 수 밖에 없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새댁만 만나면 오그라들고 거북하던 마음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 일어났다.

백일 사진. 텔레비전 위의 커다란 액자, 그 옆 탁자 위의 앨범, 작은 스냅 사진들. 사진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작품 사진이 방안 가득이었다. 얼마나 예쁘고 세련되게 잘 나왔는지 입이 딱 벌어졌다.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지나간 아이의 백일이 겹쳐졌다.

'얼마에 했어?'

' @@요'

우리 남편 월급의 사분의 일이나 되는 돈이니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비집고 나올려는 서글픔을 들키지 않으려 황급히 그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뜨겁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어갔다. 그리고 오기인지 위로인지 모르지만, 번뜩 이런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치, 어쩌면 가난은 @@짜리 사진을 찍는 것과 안 찍는 것의 차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그거 안 찍는다고 죽냐죽어. 그래 우리 집에는 큰아이 백일때 찍은 사진 아직 걸려있다. 어쩌라고. 우리 아이 건강하겠다. 나중에 돈 생기면 찍으면 되지.

차 2대? 그래 우리 집에는 10년 된 고물차다. 덜덜 거려도 뭐 못 가는 데 없다.

시리즈 책? 가서 빌리는 게 좀 귀찮지만, 도서관에 있는 책 다 우리 꺼다.

새 옷? 우리가 벗고 사냐. 좀 구질구질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얻어 무지 다양한 패션이다. 뭐. 내가 없어서 조금 불편할 뿐이지 불행한 건 아니라구. 아이들 건강하지, 남편 박봉이지만 안 짤리고 다니지, 내도록 적자지만 허리띠 졸라매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거야. 이만하면 잘 살아가고 있는 거 아냐.'

 

 뒤죽박죽이던 마음 찌꺼기를 불도저로 다 밀어 버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돈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불행해지지는 않기로.

가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 불행까지 냅다 달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기로 했다. 아교풀로 딱 붙여놓은 가난과 불행을 떼어놓으니 이렇게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가난이라는 놈도 굳이 내 삶에서 아등바등 거리며 쫓아낼 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친구처럼 손을 잡고 나만큼 가난한 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넉넉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