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나야! 시골 가지마라. 나 죽는 줄 알았어!! "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 가시고 그 이듬 해...
학교 방학 이라 부모님 일 손 돕게 다고 찾아 갔다가 죽을 고비 넘겼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막내 동생이 우리 집안으로 들어 왔다.
그 손에 들려진 짐 보따리에는 내가 죽을 고비 넘기고 가져온 것들이라고 건네준다.
엄마가 정성껏 싸 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감자....마늘....풋 고추...뭐 이런 것들로........
엥?? 이것들 때문에 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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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부모님 기척 소리에 일어 나 보니 때는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장대 같은 아들 앞 세우고 아버진 비닐 하우스 손 본다고 터덜 거리는 경운기(아버지는 기계에는 거의 명인 이지만 운전은 왕~ 초보)는 삐뚤 삐뚤 시골길을 아슬하게 운전 해서 뒤에 탄 내 동생 간 쫄려 죽을 고비 한번~
비닐 하우스 손 보고 집에 돌아 와 아침밥 달게 먹고 이번 엔 엄마 따라 호미들고 쫄랑쫄랑 따라 간곳은 감자 캐는 곳..
처음에는 호미질 할때 올망 졸망 한것들이 쪼르륵 하고 쏟아 지니까
재미 있어서 한 밭고랑은 싶게 했는데 두번째 밭고랑 할때는 발이 저려서
이쪽 다리로 엉덩이 옮고 저쪽으로 옮기고 하면서 그냥 그냥 했는데
세 번째 밭고랑은 여름 한 낮의 땡볕이 머리로 쏟아져 따갑고 땀은 줄줄 흐르고
다리에는 마비오고 나중에는 죽을것 같이 더워 호미 집어 던지고
게임 아웃~
해서 죽을 고비 두번~
점심 먹고 한숨자고( 농꾼 다 됬어...ㅎㅎㅎ)....
할머니 도와 드리겠다고 산에 따라 올라가서 나무 하다가
할아버지가 갔다 놓은(그때 할아버지 께서는 시내에서 양봉원 하셨다.)벌통 건드려
혼비 백산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그 큰 키로 겅충겅충 뛰었다면서
죽을 고비 세번~
막내 동생은 지금도 감자 캐는 철에는 시골 앞에는 얼씬도 안 한다..^^*
다음은 우리 신랑...
내가 둘째 놓고 몸 조리 하러 시골에 있었다.
그때가 사월 이었으니까 한창 바쁜 철이 었다..
그 당시는 시골 가서 얼마 되지않아 농기구 종류가 많치 않아서
거의 엄마 아버지께서 손 수 비닐 덮는 일을 하셨다.
젊은이가 보고 있을순 없어서 우리 신랑 앞에서 어깨에 메고 그 뒤를 따르면서
엄마는 비닐 깔고 아버지는 흙 덮고 해서....
우리 신랑 그 모습이 마치 밭 갈이 하는 암소 같다고 난 깔깔 거리고 웃고
우리 신랑은 부모님 봐서 미안해 할까봐 멍든 어깨 감추고....
몇칠을 그렇게 해서 담배 농사 할 준비 끝났다고 아버지 사위 덕 보고 엄청 좋아 하셨다.
그후 잔인한 달 사월이면 우리 신랑 처갓집에 얼씬도 안 한다...
다음은 우리 제부...
담배 농사와 고추 농사를 주로 하는 우리 집은 비닐에 얽힌 사연이 많다..
때는 오월인가 유월...
야트막한 산 중턱 까지 하얗게 덮힌 비닐을
연필 깎는 칼로 담배 심겨 진곳을 엣스(X)자로 그어서 담배 얼굴이 나오도록 해 줘야 하기에 엎드려서 하다 보면 피가 쏠리고 어지럽다.
한 참을 하다 허리 펴 보면 거의 그자리...
또 하다 보면 눈 앞에 펼쳐진 하얀 밭....
우리들을 쪼금 하다가 힘들 다고 그늘 밑에서 그 동안 싸인 수다를 풀어 내고 있고
결혼 한지 얼마 안된 새 신랑은 힘들어도 말도 못 하고 혼자 그 많은 비닐에다 엣스자를 그렸다.
자다가 꿈속에서도 엑스자 그렸다고 하고 한 동안 엑스 자만 봐도 어지러웠다고 한다..
질릴 만도 하지...
그 양이 엄청 났으니까...
그래서 우리 제부도 그맘 때의 처갓집은 피한다.
그 다음은 여동생과 나...
어느 핸가 추석이 좀 일렀던것 같다...
엄마가 추석이 끼여서 고추를 못 땄다고 걱정을 하길래
우리가 해 주겠다고 큰 소리 뻥 치고는 몸빼 바지에 모자에 모습은
시골 아낙같이 하고 비닐 포대 하나씩 들고 너는 이쪽 밭고랑 담당 나는 저쪽 밭고랑 담당 하면서 자신있게 나섰다.
처음에는 손 끝에 닿는 살아 있는 고추가 너무 이뻐서 하나 따고 재밌어를 연발 하고
심지어는 딱 시골 체질 이라면 가진 오바 다 떨고 하더니 조금 있으니 서로 말이 없어 진다.
한낮의 고추는 따고 돌아서면 붉어 진다고 했던가...
우리가 지난 온 자리는 그대로 붉은 색인채 우리를 조롱 하듯이 달려 있고
미숙한 우리 손에 가지채로 끊겨 진것도 있고...
일도 건성건성 해지고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몇 고랑 못 하고 민망 하지만
손 번쩍 들어 항복~
그 후로 붉은 색만 보면 약간의 경기 증세를 보였음.....
난 이 땅의 농사 짓는 분 들에게 머리 수여 감사 함은 전 한다.
우리들은 고것 하고 힘들다고 갖은 호들갑 다 떨었지만
부모님과 농부들은 정말 그 농산물들 기르기 위해 밤 잠 설쳐 가면서 자식 기르듯이 애지 중지 기른 것들이 폭락이나 제 값을 못 받을 때의 원통함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지 싶다...
농사 지으시는 분들 힘내세요.
이 땅의 도시 주부로 사는 저는 꼭 국산 농산물을 애용 할 것을 맹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