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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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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흘린 꽃가지


BY 자화상 2008-09-30


 

없어졌다.

사라졌다.

아기 소나무가.

봄부터 어제까지도 아주 곧게 싱싱하게 

자라며 나와 눈인사를 했는데.

좀 더 자라면 나하고 살자 찜해 두었는데.

누구야?

예쁘게 잘 길러 주겠지.

아쉬운 마음으로 곳곳에 눈도장 찍어 둔

아기 소나무와 야생화들을 찾으며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라,

노란 꽃 한 송이가 기다란 꽃대에 달린 채

길 한 쪽에 떨어뜨리어 져 있었다.

이름 알 수 없는 야생 수선화과 인 것 같은데

참 예뻤다.

저만치 앞을 보았다.

등허리가 좀 굽은 할머니의 한 손에 똑 같은 꽃이

한 묶음 들려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꽃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걸

모르셨나보다 하고 생각되었다. 


며칠 전에도

그 할머니의 손에 무슨 야생화인지 뿌리째 채집하여 

상수리나무 잎으로 싸서 들고 가시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혹시 어제까지 보았던 그 아기 소나무도?

어디 사시는지 모르지만,

나처럼 야생화를 좋아하시는 분을 보니

갑자기 말을 걸고 싶어졌다.


작은 야생목이나 실낱같은 야생화에서 질긴 생명력을

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는 재미는

그 어떤 정원의 값비싼 꽃나무에서도

얻을 수 없다.

 

철 따라 풀 베는 칼날에 베여도 남은 줄기에

다시 싹을 틔우는 끈기와 인내를 보며

속상했던 일은 쉽게 잊을 수 있었고

기분 좋을 땐 힘내라고 만져주곤 했다.

어느 날 좁쌀만 한 꽃을 피워낸 잡초가 있을 때는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며

신기한 자연의 섭리에 취할 때도 있었다. 


꽃을 흘리고 가시는 할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꽃을 주웠다.

노란꽃잎이 할머니의 눈길을 사로잡아 

가슴을 뛰게 하였을까?

할머니의 걸음도 꽃처럼 어여삐 사뿐거리신다.

 

 

2008-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