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일 전 쯤에 남편의 꿈에
4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보였다고 했다.
단정하게 양복을 입으시고
작은 손가방을 들으시고
"나 이제 갈란다."
하셨다는 말에 내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마지막을 못 지켜 드린 죄송함이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 남아서 기도 중에는 꼭
아버님의 영혼을 위해 간구 하고 있는중이다.
지금껏 둘째 아들인 남편의 건강을
보살펴 주시느라
가까이 머물러 주셨나보다.
이제 마음 놓으시고
가벼이 올라 가시나보다.
나름대로 그리 생각하며 우리는
지난 토요일에 산소를 찾았다.
대나무 뿌리들이 산소 위쪽까지 뻗어와
엄청 통통한 죽순들이
사방에 불쑥 불쑥 내키만큼
솟아 있어 그 기세에 무섭기까지 하였다.
다행이 우리 시조부모 봉분 근처까지는
죽순이 나지 않았다 하고 살펴보니
여기저기 흙이 파헤쳐지고 대나무 뿌리들이
잘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님께서 자주 살피시고
낫으로 뿌리들을 찾아
잘라버리신 흔적이었다.
기운도 없으신 분이 어떻게 그리 하셨는지.
요즘 얘들 육아일기 책으로 만드는데
그 내용중에 손녀 손자 재롱에 허허 웃으시던
아버님 생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산소에서 소주를 따라 놓고
절을 하는데
"오냐, 잘 왔다."
하시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살아실제 효도 다하여라는 옛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남편이 막대기로 풀숲을 휘저어
혹시 있을지 모를 뱀은 다 가라 하는데
놀란 개구리까지 폴짝 뛰어 도망갔다.
밭둑의 뽕나무에서 오디 몇 개 따먹고
논에서 뜬모를 심는 어느 어르신이
마치 아버님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정겨운 논둑길 따라
걸어 보았다.
우리 딸 다섯 살 때
모심는 동네 어른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어머님 모시고 토요시장 가서
점심 사 먹고
노래자랑 구경하시게 하였다.
남편이 이번에는 완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시골 가자고 아무 반찬도 만들지 말라고 하였기에
시장에서 반찬 거리 어머님 사 드리고
우리 것도 장 보아서 가져 왔다.
그냥 빈 손으로 시골 가기는 처음이라
어머님께 죄송하였지만,
나는 새벽부터 반찬 만들고 도시락 싸는
수고를 안해서 사실은 남편에게 고맙고
몸이 안 피곤해서 좋았다.
이래서 나도 영락없는
며느리인가 보다.
그깟 반찬 몇가지 안 만들고 도시락 챙기지 않고
시골을 다녀오며 마음도 몸도
편하다 생각하였다니 말이다.
08.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