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음식 남은 것 버리지 마세요.
나는 오이 껍질과 양파 껍질밖에 버리는 거 없거든요."
어제 딸이 다녀 가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어제 만들어 먹고 남았던 반찬들을 죄다 모아 보았다.
김밥싸고 남았던 재료들, 콩나물, 더덕 고추장, 불미나리 무침,
취나물 무침, 잘 익은 열무김치, 그리고 남은 식은 밥.
많기도 했다.
밥은 반공기 정도를 팬에 참기름 두르고 부어 가스에 올렸다.
적당하게 잔반들을 넣고 비벼 큰 접시에 담았다.
식탁에 놓고 앉았다.
'이렇게 우아하게 비빔밥을 만들어 놓으니 훌륭하구만,후후'
혼잣말을 하고 먹으며 딸을 생각했다.
자취하면서 입맛 없어 먹다 남은 음식 버려도 누가 안 볼 텐데
착실하기도 하다.
시집 보내면 살림 잘 하겠다.
나 안 닮아서 다행이네. 이러면서 먹다가 다 못 먹고
결국 설겆이 통으로 ......
난 비위가 약해서 아이들 낳아 기르면서도 얘들이 먹다 남긴
먹을 것 들을 내 입에 넣지 못하였다.
그러니 밥상에 두어 번 올려 접시에 깔리게 남은
반찬을 쓸어 먹는 습관을 만들지 못했다.
억지로 입에 넣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음식을 조금씩만 만들어 가족들이 먹고
남을 수 없도록 노력은 한다.
그런데 딸은 자취를 하며 남은 밥을 팬에 눌려
누룽지로 만들어 끓여 먹기도
한다는 말에 신통방통하여 누구 딸인고 하고
다시 보아졌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딸은 살림 솜씨가
나보다 훨씬 낫겠다 싶어서 대견해보였다.
혼자서 우아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남편이 점심 먹었느냐고 전화를 해왔다.
평소 거짓말 못하는 이 성격이 또 빌미를 자초하고야 말았다.
"시아가 자기는 오이 껍질과 양파껍질만 버린다고 해서
나도 남은 반찬 쓸어서 우아한 비빔밥 만들어 먹었지요."
했더니 남편 하는 말
"딸한테 살림 배우는구만, 잘했네."
이거 칭찬인지 야유인지 알수가 없다.
2008.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