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인 것 같다.
초등 저학년 시절 그 무더웠던 여름날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아스팔트길이었다.
지독하게 내려 붓는 여름 태양열에 아스팔트길은 푹푹 삶아진 듯 열을 내 뿜었다.
그 위를 걸어가는 내 운동화도 열을 받아 발바닥이 뜨거워 폴짝폴짝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십리길이라고 하였는데 그 때 어린 내 생각에는 이 세상에 그렇게 길고 끝없는
길은 없을 거라고 지겨워하였었다.
아무튼 한 낮에 위에서 내리 쬐이는 햇빛과 길에서 달아오르는 열로 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더위를 먹고 겨우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논이나 과수원에 일하러 가셨을 테고 오빠 언니는 학교에서
늦게 오니까 나 혼자 점심을 찾아 먹어야했다.
뱃속에서 꼬르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프니 먼저 밥 바구니를 내려야했다.
늘 부엌 문지방 위에 천정에서부터 길게 굵은 쇠줄을 늘어 뜨려 거기 끝에
밥 바구니를 걸어 놓으셨다.
거기는 여름이면 햇빛이 오지 않고 참 시원한 곳이었다.
꼽발로 문지방을 딛고 두 손을 뻗어 올려 밥 바구니를 내려 뚜껑을 열면
항상 한쪽은 보리밥에 쌀밥이 쪼금 섞여 있고 한쪽은 쌀밥에 보리밥이 쪼금 섞여 있었다.
나는 꼭 쌀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쌀밥에 편식까지하여
그래서 키도 안 크고 약을 달고 살다시피 한 것 같아 후회가 된다.
부엌 한쪽 바닥이 흙바닥이며 시원한 곳에 작은 옹기가 있었다.
그 옹기에는 여름이면 내가 제일 좋아했던 애기열무김치가 담아져 있었다.
바로 담았어도, 시큼하게 익었어도 언제나 최고로 맛이 있었다.
어머니는 절구통에 대충 통고추를 갈아서 덜 갈아진 고추와 고추씨가 섞인 채 버무려
옹기에 넣어두면 저절로 맛이 생겨나는지 김치는 부드럽고 맛은 맵지 않고
짜지 않고 참 맛있었다.
그 맛을 지금 설명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
그 김치에 된장과 풋고추를 찍어 밥을 먹고, 펌프 샘에서 윗물 뿜어내어 버리고
시원하게 올라오는 지하수를 한 그릇 마시고 나면 낮 더위는 어느새 물러가 버렸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결혼 후 가끔 그 애기열무 김치가 먹고 싶어서 직접 만들어 보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옛날 손맛을 흉내 낼 수 없었다.
더구나 냉장고가 아닌 고향의 부엌 흙바닥 한쪽 서늘한 구석에 자리하여
자연스럽게 애기열무김치를 익혀주었던 그 옹기도 없으니,
평소 없던 내 음식 솜씨로 어찌 성공 할 수 있었으리.
그냥 오늘처럼 입맛 없어 점심을 먹을까 말까 저마할 때 그 추억속의
애기열무김치를 떠올려 군침을 꿀떡 삼키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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