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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BY 자화상 2007-07-20

14일 목요일이었다.

수원에는 빠른 열차가 없었다. 

그래서 무궁화로 다섯 시간을 타고 가는데 무척 지루하였지만 즐거워하려 노력하였다.  

남편과 이어폰 한 짝 씩을 나누어 귀에 꽂고 mp3에 담아간 음악을 같이 들었다. 

오랜만에 일과 집과 모든 잡념을 잊어버리고 음악과 얘기와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마음을 누렸다.

숲이 우거진 산마다 밤꽃이 한창 피어 풍요로워 보였다.

높고 푸른 산에 양껏 부풀어 품위를 자랑하는 웅장한 나무들 사이로 간간히 이름 모를

작고 노란 꽃들이 아름다웠다.

넓고 넓은 밭에는 양파며 배추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렸다. 

모내기를 하려고 물을 받아 놓은 논도 많고 모내기를 마친 논도 많았다.

우리 시아버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지금쯤 모를 심느라고 애쓰실 텐데,

애석하게도 시아버님이 돌아가신지 삼년 째가 되었다.

우린 기일을 맞아 큰댁으로 제사를 모시러 가는 중이었다.

남편과 함께 아버님을 생각하며 살아생전 못 다한 효도를 자책하기도 하였다. 

 

수원의 큰댁에 도착하여 목포에서 사 가지고 간 뻘 낙지를 드렸다.

모두 맛있게 드시는 걸 보며 우린 들고 가느라 고생한 보람을 느끼며 흐뭇해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제사 음식 만들어야 하는데, 저녁때부터 근처의 수도관이 터져 

수리공사 하느라 물 공급이 안 되어 수돗물이 나오지 않자 가족들은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오고 긴급 수송하여 준 급수차에서 물을 길어오느라 모두 애썼다. 

형님이 물을 아껴가며 음식들을 만들고 나는 남편과 화장실을 찾아 

차를 타고 멀리 역 근처 주유소까지 다녀와야 했다. 

소량의 물로 형님은 겨우 제사상을 차릴 수 있었고 우리 형제들은 무사히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물은 밤 두시가 넘어도 나오지 않아 세수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다행히 새벽부터 물이 나와서 아침을 해 먹고 세수하고 집을 나서서

우린 아홉시 이십분 새마을 열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필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고생한 것 외에는 오랜만에 형제들과 조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몰라보게 커버린 조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제 몫을 다하고 있으니 대견스러웠다.

아버님이 이렇게 성장한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을 보셨다면 그 특유의 웃음과 목소리로

"허허 오냐 오냐 "

하시며 무척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셨으리라.

1박 2일의 장거리 여행인 듯 생각하며 다녀 온 아버님의 기일은, 내게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였던

내 생활에 잠시 휴가를 주어서 새롭게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깨달은 바가 있어 오늘 마음을 다잡고 삼년동안 신앙을 쉬고 있었던

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난 기도를 바치며 교회를 다녀왔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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