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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도 자식이 맞다


BY 자화상 2007-02-13

아침 식사를 하다가
남편은 시골 어머님이 어찌 계시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난 눈치를 챘다.

오늘은 일요일,
그래요. 오늘 나의 하루도 몽땅 가져가세요.

어제 기대했던 소식보다 마음 섭섭한 소식을 접하고
하루 종일 우울해 했었다.
그래선지 어지럽고 무기력해져
오늘 하루는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쉬고 싶었었다.

남편 말 한마디에 생각을 바꾸었다.
급하게 밥상을 치웠다.
얼마 전에 담궈 둔 김치를 용기에 담고
밑반찬을 서둘러 만들었다.
어머님이 잘 드시는 병어회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
냉동시켜 둔 병어와 재료들을 챙겼다.

그리고 감자에 갈치를 올려 갈치 찜을 해드릴 재료와
아예 밥까지 그릇에 담았다.
가면서 빵과 수박을 사고
찐 옥수수도 샀다.
일부러 전화는 하지 않았다.
깜짝 놀라게 해 드리고 싶어서.

벌써 차 문을 다 열고 달려도
바람은 시원하기만 하였다.
늘 지나치며 보아왔던 이산 저산 숲들이
오늘따라 더 푸르러 애잔한 감상에 젖게 하였다.
아마 어제의 우울했던 기분이 아직 남아 있는 때문이었으리라.

두 눈에 힘을 주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남아 있던 한 숨을
한꺼번에 다 날려 버렸다.
어머님께 밝은 웃음을 보여 드려야겠기에.
애써 생각 속에 희망을 불렀다.
다 잘 되겠지. 잘 될 거야.

희망은 금세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주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하였고
남편은 계속 뭐든지 쉽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욕심은 버리라며 오직 내 건강만을 위하라 걱정하여주었다.

그래요.
모든 게 우리가 원하고 바란다고 이루어진다면
사는 게 너무 쉬워서 우리는 할 일이 없겠지요.
마음을 비우고 상쾌한 시골 길의 공기를
양껏 들이켜 채웠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쉬지 않고 달려서인지 점심때 맞추어 우린 도착하였다.
대문을 슬그머니 밀어 열고
마당에 들어섰는데, 어머님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순간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려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하고 세 번을 부르며 걸어가 마루에 짐을 내려놓았다.
혹시 뒷마당에 계시나 싶어서
약간 큰소리로 불렀었다.

방마다 들여다보아도 부엌에까지 보아도
어머님이 안 보였다.
남편이 하는 수 없어 어머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으시자마자
"나 지금 내려가고 있다."
하시고 끊으시더라는 것이었다.

우린 서로 고개를 갸웃 거리며 이상하다 했다.
마치 우리가 오는 것을 아시고 있었던 것 같은
말씀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아셨을까? 하며
우린 궁금해 했었다.

잠시 후 어머님이 오셨다.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아셨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어머님 하시는 말씀
밭에 있는데 에미가 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한 번 들려서 내려오시는 중이었는데
애비 전화가 왔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밭은
집 뒤로 대나무 숲이 있고 그 뒤 넘어 위쪽으로 있는 밭이어서
집 하고는 한참 먼 거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거기까지 내 목소리가 울려서
팔순이시고 이젠 귀까지 좀 어두워지고 있으시다는
어머님이 들으시고 내가 부른다며
내려오시고 계셨다는 말씀에 나는 순간 감동하였다.

역시 며느리도 자식이 맞는가 보다.
그렇기에 먼 곳에서도 자식의 목소리마냥
내 목소리를 들으셨다는 말씀에
나는 더욱 우리 고부간만이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정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난 번 뵐 때보다 더 기운 없어 보이는 어머님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였지만, 어찌할 수 없는 서로의 사정으로
뫼시고 살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반찬마다 맛있다 하시며 드시는 것을 보며
매일 해드리지 못함에 죄송한 마음이었다.

어머님이 놓지 못하시고 우리가 놓게 할 수도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일만 하루 빨리 해결된다면 참 좋겠다.
그러면 남은여생 편히 쉬시게 할 수 있을 텐데...

200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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