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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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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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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


BY 자화상 2004-12-23

"아이가 기어다닐때부터 혼자 놀았어요.

제가 몸이 너무 많이 아파서 누워만 있었고....

그래서 비디오와 텔레비젼만 보게 하였더니 병의 원인이 되었는지,

세살때부터 자폐증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치료를 시작해서 삼년만에 거의 다 나았어요."
"네~ 그럼 지금으은 ....."
차마 어떤 상태인지 더 물을수가 없었다.
"거의 다 나은 상태라서 병원에 가지는 않고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요."
여섯살이라는 남자아이의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채

 미안한듯 후회스런 자책감인듯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내려다 보는데, 우리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도 갖지 않는

 아이의 눈빛을 보니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다시 접한듯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와 어머니에게 희망이 된다면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서 학원생으로 등록을 받았다.
단정한 옷 차림새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가엾어 보이는 엄마와는 달리, 아이는 목에다 턱을 붙이고

이마를 내밀며 두눈을 치켜뜨고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한곳을 뚫어져라 보고있는 모습이 마치 내가 건드리기만 하면

공격할듯한 자세로 보여 대조적이었다.

수백명의 어린이들과 눈을 맞추고 수담을 나누었지만

처음보는 눈빛이었고, 자폐증을 앓은 어린이는 처음 대하는

참이라 바로 눈앞에 보이고 있는 아이의 행동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이름이 섬돌이라 했다. 처음 몇일은 둘이 서로 탐색 하느라

조심을 하였는지 섬돌이 또한 고분 고분 대답은 안해도

내 말을 먹지 않고 들어주는 흉내라도 해주니 고마웠다.

말 시키는걸 제일 귀찮아 하고 옆에서 또래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도 시끄럽다고 신경질을 부렸으며, 누가 뭘

하든지 관심 없고 그저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걸 좋아하는 섬돌이,

그래서 하나 둘씩 이해심 많은 아이들이 섬돌이 눈치를 살피며

수군수군 조용하게 얘기하는 모습들이 기특해서 웃음이 나왔다.


섬돌이는 단단하게 쳐 놓은 울 안에 쉽게 나를 들여 놓으려

하지 않았기에, 일단 관심을 쏟아부어 한꺼풀 거미줄부터

걷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섬돌이가 들을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섬돌이는 이 다음에 커서 박사님이 되려고

지금 생각을 많이 하고 있으니 방해 하지 말고 자꾸

힐끔거리며 궁금해 하지 말고 섬돌이가 기분이 좋아서

얘기 할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더니, 착한 아이들이

이해를 했고 섬돌이도 만족한듯 내 눈치를 살폈다.

섬돌이는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내 손이 닿기도 전에 금새 뿌리치듯 머리를 비껴 버리지만,

입고 있는 옷이 참 예쁘다거나 글씨를 잘쓴다고

칭찬해주면 표정없이 내 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그 반응이 한조각의 따스한 온기로 느껴져 왔다.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섬돌이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얼핏하면 주먹에 힘을 주고

씩씩 거리며 눈을 치켜뜨고 있던 자세가 풀리면서

옆의 아이들이 바둑을 두고 있으면 한참씩

들여다 보기도 했고 재잘거리는 얘기를 뒤에서

또는 한발짝 옆에서 듣고 있기도 했다. 무척 머리가

영리한 섬돌이는 길게 설명하는걸 싫어하여

짧게 끊어서 정확하게 이해 되도록 해주어야 했고,

누군가 끼어들면 인상을 쓰고 신경질을 부리며

나와 일대일로만 수업을 하려했다. 한데 배우려는

의욕과 잘 하려는 욕심은 있었는데 끈기가 없어서 힘들었다.

 

손가락에 과한 힘을 주는 버릇이 있어서

글씨 쓸때 연필이 자꾸 부러졌고 바둑판에

돌들을 매번 흐트려 놓았다. 그래서 손에 힘을 조금만 빼라.

공부도 바둑도 급하게 서두르지 마라 곧 잘하게 될거다

난 믿는다. 양미간을 찌푸리지 마라.

턱을 목에 붙이지 말고 위로 들고 눈을 살짝 아래로 떠서

사람을 바로 보라. 웃으면 더 예쁘다 활짝 웃어라.

친구에게 괜히 화내지 마라. 친구에게 말을 붙여서 어울려 보라.

내게 자꾸 묻고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뭐든지 하라. 등등...

하루 두세시간씩 거의 섬돌이옆에서 기회가 되는대로

던져주는 잔소리? 였는데 한달이 지나면서부터 효과가 나타났다.


친구들이 섬돌이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바둑을 두자고 청하기도 했다.
아직 두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한 친구가 과자를 주며

한판 두자고 하니까 선뜻 응하더니, 자기 바둑돌이

많이 잡히자 갑자기 바둑판에 돌들을 쓸어버리고

엎드려서 악을쓰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주위에서

슬금슬금 물러나 앉았다. 섬돌이에게 이러면

안되는 거라고 설명을 하는데 어찌나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던지 그냥 두는게 옳겠다 싶어서

무관심 작전에 들어갔다.


섬돌이 같은 아이는 무관심 작전이 효과가 있고.

마음이 여리고 산만한 아이는 세심한 관심을

가져주며 칭찬과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하여주면

더 잘해보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아이들은 같이 떠들다 혼자가 되면 재미 없어 한다.

성질을 부리다가 받아주는 상대가 없으면 흐지부지

막을 내리기 때문에 억지 쓰는 아이에게는 그냥 외면

하는게 매 드는것보다 약이 될 때가 있다.

뭘하든지 간섭하지 않고 움직여도 보아주지 않고

말걸어도 대답도 하지않으면 혼자 5분 10분

시간이 흐를수록 지루해 하다가 점점 답답해 하고,

자기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을 왜? 모른채 할까?

그런 생각인지 관심을 끌기 위해 갖은 행동을 취한다.

그래도 모른채하면 결국에는 눈을 껌뻑껌뻑 거리다가

슬그머니 다가와 백기를 든다.

 

섬돌이 역시 전혀 꾸중도 하지않고 뭘하라는 지시도 없이

친구들에게만 신경쓰고 있는 나를 슬쩍슬쩍 보며

이따금 씩씩거리더니 화났다는 표현으로 바둑판을

주먹으로 탁탁 치다가 30분이 넘도록 자기를

모른채 하고 있으니까 벌떡 일어서서 책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고 문을 탁 닫고 나가는데 그냥 내버려 두었다.


다음날 매일 문을 열고 들어올때마다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양미간을 찌푸리고 턱을 목에 붙이고 눈을 위로 치켜뜨고 인사도 없이 )

들어와 자리에 앉더니 옆에 있는 월간 바둑책을 들고

말없이 넘겨보고 있었다.모른채 하고 다른 아이와 바둑을 두고 있는데,

한참을 딴짓거리 하다가 심심함을 더 참지 못하겠는지
"나 뭐해요?"
하며 오기를 부리는듯 소리를 질러서 못 들은채 했더니 다시 작은소리로
"선생님 저하고 바둑공부해요"
하여서 그때서야 아는채 하고 웃으며 다가가서

전날 행동은 잘못된거라는 설명을 하여 죄송하다는

사과를 받고 평상시와 같이 대하며 공부를 했었다.

 

겉 행동을 모두 벗겨내면 참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여서

상으로 사탕이나 학용품을 친구들보다 많이 받아가는

섬돌이가 가져온 일년이, 때때로 울고 소리지르고

다시 웃는 만화가 되어 펼쳐보니, 친구들이 많아졌고

얼굴에 미소가 살고 제법 바둑도 하루 한두판 정도는 무사히?

끝냈으며, 남의 바둑 훈수까지 하고 매일 유치원 소식까지

전해줄 정도로 성격도 좋아지니, 눈빛이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섬돌이가 학원에 갓 등록한 2~3학년 형들보다

암산을 빨리 하여 또래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면서

초등 일학년에 들어간후, 어느날 섬돌이에게서

보물을 발견하듯 신기한 일면을 보았다.

같은반 여자 친구들만 보면 그저 표정이 밝아지고

소리내어 웃으며 얘기하고 바둑을 가르쳐 주겠다며

설명을 해주는데 흐믓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 잠재하여 남아있는 과격하고 성급한 성격과 마음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는 외고집을 순화시키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여자 친구들과 사귀게 하는것이

빠른 효과를 얻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섬돌이 어머니께 학교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시게 했더니

여자 친구와 짝꿍이 되었다고 섬돌이가 아주 좋아하며 기뻐하였다.

 

섬돌이가 다른 친구들과 같은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잘 어울려 있어서 한시름 놓고 보람을 느낄때쯤

중학교 2학년이라는 남학생이 바둑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그 학생 어머니로부터 들으니, 학생이 아기때부터 자폐아 였고

지금은 엄청 좋아진 상태이며 바둑을 배우면 차분해지고

집중력과 수리 이해력에 사회성까지 좋아진다고 하여 왔다는데,

키는 165Cm정도에 아주 잘생긴 얼굴이었고 말을 시켜보니

네살짜리 아이같은 부정확한 발음에 행동은

유치원생 정도의 수준이랄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저 혼자서 히히히 소리내어 웃고 있는데

섬돌이 보다 훨씬 힘들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거절할수가 없었다. 학생의 눈빛이 너무 순하고

내게 뭔가 바램을 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듯 한데다가

섬돌이가 그 형을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었기에.


이름이 은식이라는 학생은 심성이 매우 착했다.

아이들을 좋아했고 섬돌이 말을 잘 들어 주었다.
"형아 ! 자꾸 웃지마, 말도 발음을 똑똑하게해"
하며 형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고 스스로

자기의 돌을 형이 잡아가도록 양보도 하는

섬돌이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이젠 비켜내지도 않고 으쓱하며 웃는데,

섬돌이가 언제 울안에 있었는가 싶도록

달라진 행동이 참 마음에 들었다. (끝)

2004.12.23.  (얼마전에 어느 문학작품 공모의 수필 부문에 응모했었던 글이다. 

어제 섬돌이 엄마에게서  섬돌이가 기말고사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과

바둑 대회 나가서 부문별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기뻐서 섬돌이가 보고싶어 써 두었던 글을 올린다)

(남편 병 간호 하느라 거의 10개월을 바둑 학원 쉬고 있으니 섬돌이를 비롯하여

학원생 아이들이 모두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