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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나들이


BY 섬그늘 2004-10-19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오클랜드의 날씨는 특별히 나들이를 마음먹는 날 더 심통을 부린다.

 

아침일찍부터 서둘러 김밥을 만들고 음료수를 준비하고 옷까지 갈아입고 대 부대의 출동을 알리는데 반갑지않은 소나기님이 쉬어가라신다.

 

큰아이는 비가오는 것을 기뻐하고 박수치며 비가 올줄 알았노라 즐거워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듯한 아이는 온가족나들이가 벌 서는것처럼 싫단다.  한국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가족 여섯이 함께하는 나들이에 처음부터 못마땅했던 큰아이는 가족소풍에 자기만 빼달라고 졸르고 졸랐는데, 하늘을 가를듯이 쏟아지는 소나기가 어찌 아니 기쁘리오!

 

모처럼의 나들이라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세째는 벌써부터 고인 눈물을 떨어뜨리기 바쁘다.  아이를 달래는 나의 손길에 짜증이 묻혔음인지 남편은 내눈치를 보느라 어설프게 아이들을 재촉해댄다.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런 내 감정의 변화가 무색해질 즈음, 비가 언제왔었냐는 듯이 맑고 투명한 하늘이 세째의 음성에 방울을 단다.

 

드디어 출발... 

 

길갓집의 낮은 담장안에 꽃들이 할머니 마음에 십대소녀같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정말 예쁘다.  오래 살다보니 이리 예쁜 꽃들을 보게되는구나!" 

"아이구 저 꽃은 사발보다 더 크구나, 어찌 이리 예쁠고!"  

할머니의 꽃예찬에 아이들의 얼굴색이 조금씩 살아난다.  소풍가는 유치원생들은 아니여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노랫소리도 잔잔히 들리고...  아침부터 들떠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던 세째는 고단했던지 소란한 가운데 잠이 들었다. 

 

공원에 도착하여 마른 잔디를 찾아 여장을 풀고 온가족이 둘러앉았다.  둘째는 할머니의 더딘 걸음을 부축하며 연신 재잘거린다.  반이나 알아들으시나?  짧은 한국말로 아는 단어는 다 동원하여 할머니에게 무슨말이든 하려고 애쓰는 딸의 마음이 고맙다.  남편이 아는 단어는 그나마도 더 짧다.  손짓 몸짓으로 부모님과 의사소통을 하려 애쓰는 남편이 부모님은 귀여우시단다.  햇살가득한 공원 한모퉁이에서 싸온 점심으로 요기하고 아이들의 재롱을 자장가삼아 잠시 한시름을 잊는다.

 

부로님의 가느다란 코골음소리가 음악처럼 아름답다.  저 멀리서 남편과 큰아이가 공차기를 하는지 말싸움을 하는지... 둘째 세째는 잔디 가득한 토끼풀을 뜯어와 팔찌를 만드느라 바쁘고... 최근엔 늘 할아버지 차지였던 네째는 안아주는 엄마의 손길이 기쁘기만하다.

 

모처럼의 나들이는 이렇게 온가족의 기억속에 한페이지로 장식되어 먼훗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