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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동경 흐림


BY 한길 2004-12-20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끼어 비라도 한 줄기 뿌릴 듯하더니 오후가 되어서야 한 방울 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흐린 날은 왜 이리도 외출하기가 싫어지는 지. 신주쿠에서 일본 친구들을 만나 마신 술이 일요일 하루종일 취하게 만들었다. 생각같아서는 가까운 곳에라도 가고 싶었지만 날씨도 그렇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는 것이 용기가 필요했다.

 

까마귀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도심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 소리는 정말 기분이 묘하다. 도심 속에서 먹을 것은 있는 지...... 아침을 까마귀 울음을 들으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지만 어쩌겠는가. 날씨까지 우중충한데 까마귀까지 울어대니 귀라도 막고 싶은 심정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기분이 갈아 앉는다던가 왠지 한국에 있는 아내가 보고 싶어지면 까마귀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한국 같으면 아침에 까치 울음소리로 희소식을 기대하고 하루를 시작할 텐데 동경에는 까치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까마귀가 자연스럽게 도심 이곳 저곳을 휘젓고 다니다. 처음 까마귀가 도심의 하늘을 날으며 까-악 울어대는 바람에 기겁을 했었다. 지금이야 그러려니 보고 듣고 넘기지만 아무리 들어도 까마귀 울음소리는 기분이 나쁘다.

 

한국 같으면 술을 마신 다음에 해장이라도 했을 텐데 해장국도 없거니와 비싸서 요기라도 할겸 도시락 집에 들렀다.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숙소를 빠져나온 것이다. 한 방울 두 방울 간지럽게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싫지는 않았다. 12월 중순의 날씨치고는 너무 따뜻한 동경 날씨다. 도시락 집은 아주 저렴해서 일본인들도 많이 들리는 곳이다. 도시락이 대부분 팔려나가고 남은 도시락이 몇 개 없었다. 250엔을 주고 먹을 만한 것으로 골랐다. 도시락 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까마귀가 까-악 울며 머리 위로 지나갔다. 어찌나 울음소리가 크던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길헐... 재수 없게..."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다.

도심의 불들이 하나둘 켜지고, 신호를 건너며 한국의 아내가 끓여준 김치치게가 생각나 군침을 삼키며 조금씩 늘어나는 빗방울을 맞으며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