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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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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BY 낸시 2022-05-24

큰언니가 다니는 성당 신부님이 언니보고 부르주아라고 했다한다.
살고있는 아파트 주택연금으로 근근히 사는 독거노인이 부르주아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언니의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을 아는  형제들이 가끔씩 도와주기도 한다.
언니는 이 말을 전하면서  어이없고 기가 막힌다고 한다.

언니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몇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등록금 낼 돈이 없어 중학교를 다니다 말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를 통해 들어갔다.
입학식날 모두 새교복을 입고 나타났는데 나만 위와 아래가 짝짝이인 헌 옷을 입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를 억지로 끌고  양장점에 갔다.
우연이었지만  양장점 주인은 아버지가 산지기로 있는 산의 주인이었다.
마침, 맞춰 놓고 찾아가지 않는 옷이 있다면서 헐값에 준다하였다.
내 몸에 맞춘 옷이 아니라  너무 컸지만 그 마저도 감사하며 삼년 내내 그 교복을 입고 다녔다.
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매점에서 아이들 몇이 수근거리고 있기에, 뭔소리야 나도 좀 알자, 하고 끼어들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너 같은 부잣집 딸은 이해하지 못할 말이야, 였다.
결혼했더니, 날더러 가난하게 살아보질 않아서 철이 없다고 남편이 그런다.
어려선 마을 사람들에게 부잣집 막내딸로 불리웠다.
소작농에 산지기 노릇을 하면서도 부지런한 부모 덕에 끼니 걱정은 안한다고 들은 소리다.
하긴 동갑내기 여자애가 마을에 아홉이 있었는데, 나 혼자만 중학교에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부르주아, 쉽게 말해서 부자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돌아본 나는 한번도 부자인 적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였던 것도 같다.
내가 자란 마을은 기와집 하나 없는 가난한 동네였다.
그 속에서 부지런한 부모 덕에 끼니 걱정은 없었고, 할아버지 덕에 꽃과 나무에 묻혀 살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형제들은 모두 돈 걱정을 안한다.
생활비가 없어 주택연금을 신청해 사는 언니도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하는 법이 없다.
형편을 아는 우리가 어쩌다 보내는 돈으로  성당 사람들에게 한 턱 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신부님이 언니를 부르주아로 착각할 만도 하다.
그런 언니가 이쁘고 자랑스럽다.
언니가 끝까지  부르주아로 살다 갔으면 좋겠다.
언니의 부르주아 인생이 끝까지 갈 수 있게 응원하고 싶다.
언니야, 우린 끝까지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부르주아로 살자.
우리 부모가 손톱이 닮아지고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일해서 키운 보람이 있어야잖아.
난 언니가 부르주아 소리를 듣고 산다니 정말 좋다.
누군가에게 불쌍하고 가난한 노인네 취급을 받는 언니라면 내 마음이 너무너무 아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