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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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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시집보낼려니 내 부모님이 간절하게 생각이 난다


BY 원불화 2005-11-20

예전 내가 중학교 때까지는 하인을 두고 살정도로 유복하게 자라

 

난 지금 까지 남에 집에서 살아본적없이 우리에 집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 가서부터 서서히 아버지 하시는 일이 사기에 걸리고

 

남에 빚보증을 서주신게 잘못되어 땅문서가 없어지고

 

남한테 돈을 주면 갚지를 안고 뭐 그렇게 저렇게 하여 서서히

 

재산이 줄어들어갔다

 

그렇다고 밥을 굶거나 그런적은 없지만  아버지와 엄마의 그 고통은

 

마음에 고통으로 병이 나시기도하고 집안에는 풍파가 심했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으로 나가야했고 오빠는 대학을 다니다

 

군에를 갔다  우리 육남매는 아직 어린 동생들은 이제 중학교 초등하교 그렇게 줄줄이 많았

 

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고등교육을 모두 시켜주셨다

 

지금 내가 딸을 시집보낼려니  어려운 여건에서 시집을 보내시느냐

 

또 마음 고생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하니 지금 난 이제 철이들어가는지

 

부모님이 보고 싶고 부모님 생각만하면 눈물이 난다

 

엄마는 날을 잡아  그것도 아들을 낳고  불행한 일이 없는 아줌마들만 초청을 하여

 

이불을 꼬매주시고  폐백음식을 만들어서 보내주시고

 

지금도 한번도 입어보지 않은 한복을 맞추어 주시고  시댁가서 입으라고 옷을 사주시고

 

그릇을 사시고 그리고 대야와 요강이 없으면 시집을 못가는지 대야와 요강은 외사촌이

 

해주었다

 

그때는 가정의례간소하로  청첩장도 인쇄가 안되어 아버지께서 친히

 

편지 형식으로 쓰셔서 우표물로 보내셨다

 

잘해주고 싶으셨을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를 이제서 난 이해한다

 

그때는 천방지축 뭔 생각을 했는지 망아지 날뛰듯 뛰기만 했나

 

생각나는게 없다 내가 한 노릇이란

 

아버지와 엄마 함께 장농을 볼러 가셨는데  그냥 난 권하는데로 응했던거같다

 

장농 화장대 찬장 지금은 남아 있는게  요강하고 대야뿐이다

 

왜 시집올때 해온 물건이 하나 하나 없어질때마다 마음이 아픈건 뭔지 모르겠다

 

추운걸 싫어하는 날 위하여 털실로 반바지를 맞추어서 속에다 입으랴고 주신옷은

 

지금까지 잘도 입고 있다

 

이불도 다 두껍다고 다 버리고 남은건 주발 대접 수저 그정도 인거같다

 

엄마 아버지의 기가 들어가 있던 것들을 왜 그렇게 쉽게 다 버렸는지

 

내가 딸을 시집보낼려니 부모님이 더욱 그립고 안타깝고 보고싶다

 

엄마 보고싶어요 아버지 보고싶어요 할머니 보고싶어요

 

시집은 시집으로 나를 사랑하시던 분들은 역시 당신들 뿐이더군요

 

엄마 아버지 할머니 사랑해요 왜 평소에 그말한마디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

 

해드리지를 못하였는지 이제가 후회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당신들 모두를 사랑해요 내가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