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또래 친구가 있다, 우리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사귄 동네친구.
어머님 댁이랑 그 친구네 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줄 끄트머리쯤에 자리하고 있다.
대문을 나와 몸을 쑥 내밀어야 저쯤이 친구네 집이지 하며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 녀석은 늘 두살 어린 동생이랑 붙어다닌다.
그 녀석은 우리아이와 같이 학교에 가고, 동생은 한시간 정도 지난 후에 유치원엘 간다, 혼자서...
학교 끝나자마자 집에 오면 밥상보를 걷고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을 마주하는 아이들.
동생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람 북적대는 어머님 댁으로 오는게 일과가 되어버린 아이들.
우리 아이 어깨에도 못미치는 작은 키, 깡마른 체구, 쌀쌀한 날씨에도 외투하나 걸치지 않고 양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은채 종종걸음을 쳐서 우리 아이를 부른다, 대문앞에서...
점심 먹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먹었다고 대답하지만, 며칠전에는 가방 멘 채로 그냥 우리 아이를 따라왔기에 같이 밥 먹으라고 숟가락을 놓아주셨단다, 어머님께서...
총각김치를 밥 숟가락 위에 척척 얹어가며 얼마나 맛있게 밥을 먹던지 그 모습이 이뻤다고 칭찬하신다, 우리어머님..
허겁지겁 맛나게 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온다.
어머님께서 저녁 밥하기 시작하면 그 녀석들은 가란말도 안했는데 쏜살같이 인사하고는 방을 나선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엄마가 퇴근하시는 늦은밤까지 형제들만 오두마니 집을 지키고 있어야한다고 우리 아이한테 들은 기억이 난다.
오로지 둘이만 의지하면서 밤의 무서움을 전등 불빛으로 애써 몰아내면서....
그모습 또한 눈에 선하여 맘이 아프기도 했다.
일요일 낮, 큰 아이는 형들이랑 먼저 보내놓고, 나는 둘째를 데리고 목욕탕 가는길...그 녀석들이 쪼르르 뛰어와서 인사를 한다. 항상 밝게 웃는 모습이 나를 참 편안하게 한다. 정을 붙이게끔 한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목욕탕 가는 길이라고 짧게 답한다.
엄마 한테 돈 타가지고 같이 가자고 했더니 고개 숙이고 작은 슈퍼 앞 조잡한 오락기 앞에 도로 앉는다.
어제 저녁 밥 하는데 우리 아이가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엄마, 일요일날 내 친구 만났어요?
--응, 어떻게 알았어? 목욕가다가 만났는데...
오늘 학교에서 얘기해줬어요.
--그래? 다음엔 너랑 같이 목욕가자고 해.
안돼요, 걔네 엄마가 돈 안줄거예요.
--왜?
걔네 엄마 계속 일 가잖아요. 일요일도 집에 없어요.
--응, 그래...그럼 나중에 같이 가. 근데 걔네는 방이 몇칸이야?
몇칸이라뇨?
(아이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우리는 방이 세칸이잖아. 너 친구네는 몇칸이냐구..
--아, 걔네는 방이 하나만 있어요. 방문 열면요, 바로 욕실이구요, 그 문 열면 바로 길이예요.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내가 왜 아이에게 친구네 방이 몇칸이냐는 질문을 했을까?
그거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좋아하는게 뭔지, 언제 한번 우리집에 데리고 오라는둥, 또 웃는 모습이 귀엽다라든가 할말이 많았음에도 내 입에선 불쑥 방이 몇칸이냐는 말이 뱉어지고 말았다.
그저 친구인 아이들에게 세상의 잣대로 굵게 금을 그어놓고 만것 같은 자책이 밀려왔다.
그 질문을 던져놓고 얼마나 후회가 밀려오던지, 하지만 주워담을 수 없는 말들...
행여 우리 아이의 맘 속에 친구의 사는 형편이 자리잡아 아이의 눈과 귀를 흐려지게 하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덜컥했다.
나 또한 친구를 사귈 떄 그런 형편을 보고 사귄적이 없건만
내가 왜 아이에게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을까...
친구랑 항상 사이좋게 지내야돼!!
--네, 엄마, 걱정 마세요.
아이가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우리아이의 길동무가 되어주고, 말벗이 되어주는 아이들...올해가 저물기 전에 한번 집으로 불러 맛난 간식을 대접하리라..
제발 어른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늘 소중한 벗으로 지내길 바래본다.
얘들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