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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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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시장


BY 하나 2004-12-10

봄날 같은 12월의 저녁 길을 걸어간다.

늘 가는 재래시장이지만 어째 오늘은 구경꾼들만 빼곡한 것 같다.

저녁 5시를 기해 순식간에 곳곳을 덮치는 땅거미, 상인들의 마음은 다급해지지만 구경꾼들은 잠깐씩  눈길만 줄뿐 여간해선 쌈지돈을 꺼내지  않는다.

나 역시 이 시간을 틈탄다.

"떨이요 떨이"를 외치는 곳마다 눈길주기 바쁘고 다리품을 조금만 팔면 횡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상인들만큼이나 마음이 분주해진다.

이번 장에선  느타리 버섯과 단감을 두둑이 얻었다.

사람들이 두줄 세줄 밀집해 있는 곳은 보나마나 떨이를 외치는 집 앞이요,

물건값이 싼 집앞이다.

정육점도 여러곳이 몰려있지만, 유독 50프로 할인해서 파는 대형 정육점에만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경기가 불황이다, 소비가 지나치게 위축되었다고 하더니 시장에 가면 실감이 난다.

아직 이른 저녁 시간인데 문 닫은 집들을 보면 장사가 안돼서 그런것만 같다.

이렇게  나와보면 몸으로 느껴져 막상 사려고 했던 것조차도   몇번을 망설이게 된다. 물건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망설임을 보면 필요했던 물건이었음에도  발길을 돌리게 된다.

너도나도 싸다고 주머니 속 돈 꺼내어 내밀면 나도 같이 휩쓸릴텐데, 어딜가나 그 망설임들이 전염이 되어 시장안은 온통 썰렁한 기운이 만연한 듯 하다.

생선 가게 아줌마들의 내 집 생선자랑이 결국 손님 빼앗기로 번지고, 티격태격 싸움을 불러일으켜 손님은 온데간데없고, 밤공기중에는 쇳소리만 퍼지고 있었다.

손님이 귀하면 온정도 사라지는법, 손님들 머뭇거림 하나에도 여럿의 눈이 모아지는 곳이라 걸어가기도 부담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무 다섯개에 천오백원이라..정말 시세 없구나.

오이도 한무더기에 이천원이라...

여름에도 이처럼 값이 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물건을 덤으로 얻었음에도 뭔지  모를 마음 한켠의 무거운 짐 하나 덜컥 들어앉는다.

번듯한 식당안은 주인들만 한가로이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응시한다.

길가에 자리한  포장마차식 분식집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튀김 세개에 천원, 잔치국수 한그릇에 이천원, 순대 1인분에 이천원...

부담 없는 가격탓에 찬바람 맞으면서도 그렇게 앉아서 허기를 달랜다.

겨울날씨도 따스한데 우리 경제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전문적인건 모르지만, 적어도 시장에 나갔을 때 훈훈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며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