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니?
내 친구는 그렇게 직장 생활하는 나를 배려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어. 마침 잘 연락했어..안 그래도 전화한번 해보려고 했는데...별일없지?
난 또 그렇게 바쁜 시간임에도 친구가 무안할까 싶어 얼른 답글을 띄운다.
나도 집에 있을 땐 그랬었다. 아이가 자거나 혹은 잠시 짬이 나서 내가 한가한 시간이 되었을 때 서둘러 친구들에게 전화하면 직장에 매인 친구들은 수다를 떨지 못했다.
지금은 바쁘니깐 나중에 자기가 전화하겠다며 급하게 안부만을 물어오곤 했었다.
별일 없는거지? 라며...
그럼 난 괜히 전화 건 게 무안해져서는 더는 수화기를 잡지 못하고 내려 놓고 말았던 기억.
물론 바쁜거 알지, 나도 똑같은 직장생활을 했으니까.
그러면서도 그때의 그 허전함, 무안함, 외톨이가 된 기분, 나만 동떨어진 느낌, 무력감, 친구를 잃어버린 듯한 덜컹함 같은 마음 부스러기들은 쉬 사그라들지를 못했던 기억도 있다.
직장이란 그런 곳이지.
맘 놓고 수다 떨 수 있는 곳은 아니지, 눈치를 주는 사람 없어도 스스로 눈치를 봐야 하는 곳이기도 하지, 상하관계가 분명한 곳이기도 하지, 일을 핑계로 내 할 도리를 조금은 미룰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지.
너. 살 빠졌다며?
-응, 조금...이사하고 좀 바쁘게 움직였더니 살이 빠지네.
날씨가 차다, 감기 조심해라. 우린 두 놈 다 감기에 걸려서 콜록거리고 있어. 애들은 괜찮니?
-응, 괜찮아.
이사하고 집들이 하느라고 힘들었나보네?
-그건 뭐 별거 아니었어.
........(내가 니 맘 다 안다. 친정 부모님 때문에 맘 상해서 그런거지? 걱정마, 나아질거야)
-친정 아버지가 아프셔.
어디가 아프셔? 병원 가봤어? 어머님 수발하시느라 힘드신가보다.
-그러게...걱정이다 야. 엄마도 저러고 누워있는데 아버지까지 병 나시면...아들딸 다 소용없다.
그래도 남동생 근처에 살잖아. 좀 자주 와보라고 해. ...
-아버지가 필요없대. 같이는 못살겠다고 하시고...큰 언니가 친정 근처로 이사와서 좀 마음이 놓인다 싶었는데 아버지가 그냥 따로 사신다고 해서...
그 놈의 아들은 뭐가 그리 잘났다니?
-.... 너네 친정은 어때? 다 편안하셔?
그렇지 뭐..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주말에 짬이 나도 난 왜 친정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드나 몰라..난 나쁜 딸이다.
-그럴 리가 있니? ....내가 얘기했나?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베란다에서 골프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구?
그래? 멋지다...
-근데 골프장에서 왔다갔다하는 저 여자들은 뭐니?
그냥 인형들로 생각해, 주인의 관심을 잃은 인형들.
-인형? ㅎㅎ 표현이 재밌다. 왜?
그냥 너는 멋진 풍경이나 즐겨라. 골프장 잔디밭 얼마나 보기 좋니? 눈이 시원해질거다.
그나마 그 여자들 골프장에서 왔다갔다하니깐 사람들이 흘끔거리는 거지. 우리 근처에 와봐라 쳐다보기나 하나. 그 여자들 인형이야. 오죽 할 일이 없으면 거기와서 빈둥거리겠니?
너랑 나는 할 일이 많잖아. 우린 바쁘니깐 인형이 될 시간이 없는거야. 그렇지?
-역시, 넌 내 친구다. ㅎㅎ
그래. 우리 즐겁게 살자. 현실만 보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앞날엔 뭔가 좋은일이 있을거란 예감으로 살자. 지금 열심히 살고 미래는 신께 답을 구해보지 뭐.
-그래그래...바쁘지 않어?
응, 이제 마감해야돼..요맘때 되면 얼른 일 끝내고 집에 갈 생각만 난다. ㅎㅎ 내가 또 연락할께.
-그래, 잘 들어가...
친구의 미소 띈 얼굴이 떠오른다.
나, 친구와의 대화를 접고 서둘러 밀린 일을 처리한다.
나,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아니다, 난 늘 친구에게 위안을 받는다.
그런 친구가 있어 행복한 저녁이다.